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6 Building Pyramids
농업혁명 만큼 역사상 논란이 많은 사건은 없습니다. 번영과 진보의 길로 인류가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견해와 자연과의 공생관계를 떠나 탐욕과 단절의 방향으로 치닫는 파멸의 시작이이라는 상반되는 견해가 있습니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확실한 것은 인구의 증가로 인해 다시 농업혁명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수렵채집 시절에 비하면 아주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하게됩니다. 나무, 돌, 진흙으로 만든 구조물에 강한 애착을 부여하면서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인데요. 이 집이라는 구조물은 이웃과의 단절을 초래하면서 자기 중심적인 피조물의 정신세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주거지에 많은 노동력을 투자하여 주변의 야생과는 구분되게 만들었으며 주변에 벽을 세워 집을 보호하게 됩니다. 주거지에 지속적으로 침번하는 벌레나 곤충들을 몰아내기 위해 인간은 오늘날까지도 끝이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집이라는 주거지에 인간은 다양한 물건들을 축적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서식지에 대한 애착은 강해집니다. 서식지를 잃게 되면 그동안 축적해놓은 물건들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The Coming of the Future
농업을 하면서 농부는 수년 또는 수십년 미래로 상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수렵채집인들에게 미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맹이나 정치적 라이벌 관계와 모두 장기적인 활동의 증거들이 있어 수렵채집인들도 미래를 위한 계획을 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수렵과 채집에 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경제생활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은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이 수렵채집인들을 미래에 대한 염려에서 해방을 시켜주었습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므로 걱정을 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농업혁명으로 인해 미래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농부들은 미래를 대한 대비를 하면서 열심히 일해야만 합니다. 농업 경제는 계절에 따른 생산량의 사이클을에 기반하는데, 생산량이 극대화되는 추수 기간이 지나면 기나긴 기간동안의 재배 기간동안에는 생산량이 없습니다. 한편, 농업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불확실은 미래에 대한 염려에 이유가 됩니다. 농경에 적합한 식물과 동물의 종류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기후의 영향을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들은 생산할 수 있을때 많은 양을 생산하여 비축해두었야 생산이 부족한 시기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미래에 대한 걱정의 인간의 생각의 주된 주인공이 됩니다. 물론 걱정할 이유가 많은 것도 염려를 늘렸겠지만,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염려가 늘어나게 한 요인이 됩니다. 염려를 떨쳐내기 위해 농부는 더운 여름날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농업이 가져다주는 염려는 결국 대규모 정치와 사회 시스템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의 미래에 대한 보장은 확보되지 않고, 지배자와 엘리트 계층들은 오히려 최소의 생활이 가능한 정도만 남겨두고 농부들이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착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착취된 잉여 식량들이 정치, 전쟁, 예술 그리고 철학이 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궁전, 성, 기념비, 사원 등이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먹여 살린 소수의 엘리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소수의 업적이 역사로 남을때, 다른 다수의 사람들은 밭을 갈고 물동이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An Imagined Order
잉여 식량과 운송 수단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군집을 이루어 살고, 마을과 도시가 등장하고, 이들이 모여서 왕국과 상업망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군집사회에서는 땅과 물은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 분쟁과 대립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뭄과 전쟁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등 사회적인 약속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나 혁명이 식량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부유한 법률가들이 주동했으며, 로마는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정치적 분열을 겪습니다. 유고가 분열했을 당시에도 식량자급도는 최고의 시기였습니다. 인류는 수백만년동안 수십명으로 구성된 작은 부족 속에서 협력하도록 진화되어왔습니다. 농업혁명 이후 빠른 속도로 도시, 왕국 그리고 제국이 등장하면서 대규모 협력을 할 수 있는 본능을 진화시킬 충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물학적 본능이 없이 수렵채집 시기에도 인류는 신화를 바탕으로 수백명 규모의 낯선 이들과 협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한계도 있었습니다. 조상의 영혼이나 부족의 토템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로는 500명 가량의 사람들을 협력하게 해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수백만명의 낯선이들과 함께 협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 조국, 그리고 협동주식회사와 같은 스토리들은 수백만명의 협동이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 사회에서는 기원전 8500년 경 수백명 정도의 군집 생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기원전 221년 4천만명의 청나라의 등장과 1억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로마제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협력 시스템은 상상의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공유 미신을 바탕으로 억압과 착취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원전후 1776년의 함무라비 법전과 미국의 독립선언을 보면 이런 미신이 어떻게 제국의 지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Anu, Enli, Marduk이라는 신들이 세상의 질서를 정하고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무라비를 임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사회 계층을 지키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면 제국의 수백만명의 국민들은 조화롭게 협력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미국의 독립 선언은 보편적이고 불멸의 정의의 원칙들은 신성한 힘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인간들이 그 신성한 원칙들에 따라 행동하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미국의 독립선언은 평등을 정당화하는 딜레마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둘다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들은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객관적으로 실재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평등이라는 개념은 신화로 인간의 상상에만 존재하는데, 실제로 진정한 평등이 있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평등이란 개념은 창조라는 개념이 있어야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의 관점은 창조를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을 전제하는 진화가 있을 뿐입니다. 다르게 진화했다는 것이지요. 권리와 자유 역시 생물학적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상상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에 특정한 질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좀더 효울적인 협력과 보다 나은 사회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상되어진 질서가 악의적인 음모나 쓸모없는 신기루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수많은 인류가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True Believers
인간의 기본권리들이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듣는 것은 거북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붕괴될 위험에 처해지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볼테르는 "신이 없더라도 나의 하인들에게 이야기하지 마라, 안그러면 밤새 그들이 나를 살해할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불안은 정당해보입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는 신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붕괴되기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신화는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신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강도높은 노력으로 강제할 것입니다. 하지만, 폭력으로는 이런 신화를 지켜낼 수는 없으며, 그 신화를 맹신하는 추종자들이 필요합니다. 집단적인 폭력은 조직할 수 있는 인간의 단체 활동 중 가장 어려운 것으로 그것들을 조직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회 계층의 정점에 있는 지배자들이 사람들이 믿지 않는 상상되어진 질서가 강제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질서들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서를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들은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리스의 견유주의 학파인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방문해서 소원을 들어주겠다하자, 햇빛을 가리고있으니 잠시만 옆으로 비켜달라고 소원을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냉소주의자들이 제국을 건설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그 상상되어진 질서를 열열히 믿고 추정하는 자들의 의해 유지가되는 것입니다.
The Prison Walls
상상되어진 질서를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서는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않됩니다. 대신 그 질서들은 위대한 신이나 법률에 근거한 객관적인 실제라는 것을 주장해야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이들 질서가 상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
상상되어진 질서가 물질 세계에 내재됩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들은 둘과 같은 곳에 새겨지듯이 우리를 둘러싼 물질세계와 통합되어 존재하게 됩니다. 개인주의라는 개념의 경우 학교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의 삶에 자주 언급이 되고, 현대의 건축 구조물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현대의 집의 구조에서는 개인주의에 근거하여 그에 알맞도록 각자의 방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개념이 없었던 중세의 집에서는 개인적인 방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이 더 일반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물질 세계에 영향을 끼쳐 상상되어진 질서는 존재하게 됩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는 우리의 욕망을 제단합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당시에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상상되어진 질서가 존재합니다. 당대에 유행하는 신화들은 인간의 욕망의 형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은 역으로 이런 상상되어진 질서의 가장 중요한 방어기재가 됩니다. 낭만주의, 애국심, 자본주의, 인본주의 등은 수세기 동안 존재하던 질서입니다. 가령 "마음이 이끄는대로 행동해라"라고 우리가 흔히 듣는 상황을 예로 들어봅시다. 마음은 이중적인 요인 당시에 유행하는 신화에 영향을 많습니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와 20세기에는 소비주의 신화에 영향력이 컸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행산업은 이 둘을 적절하게 잘 조화를 시켰습니다. 낭만주의를 통해 사람들은 낯선 곳에 여행을 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소비주의를 통해 여행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부터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학이 되면 여러 수고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지요. 고대 이집트 왕이 휴가라고 옆의 바빌론 제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나요?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인의 엘리트들과 마찬가지로 피라미드를 짓는데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사용합니다. 단지 이들 피라미들은 다른 이름, 크기, 모양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로 하여금 고되게 피라미드를 짓게 하는 욕망을 제단하는 신화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경우는 정작 드뭅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는 상호-주관적입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수백만명을 확신시켜야 합니다. 이들 질서는 상호-주관적으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의 상상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이해를 위해 먼저 객관적, 주관적, 상호-주관적이란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해봅니다. 객관적인 것은 인간의 의식이나 믿음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한 예가 되겠습니다. 주관적인 것은 개인의 의식이나 믿음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 개인이 믿음을 바꾸게 되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상호-주관적인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의식들을 연결한 커뮤니케이션 망에서 존재합니다. 만약 해당 커뮤니케이션 망에 속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거나 믿음을 변경하면, 상호-주관적인 현상들도 변하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예로는 역사의 강력한 원동력이었던 법률, 돈, 신, 국가들이 있습니다. 푸조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푸조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는데, 푸조의 사장이 푸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에 병원에 갇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장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달러, 인권, 미국 등도 공유 상상 속에 존재합니다. 한두명이 믿음을 잃게 되더라도 별 의미는 없습니다.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정치 정당, 이데올로기 운동 또는 종교 활동과 같은 복잡한 조직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푸조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법률을 통해 푸조의 해산을 선언해야만 하듯이 말입니다.
이런 상상되어진 질서라는 감옥의 벽을 부수어야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데요. 그 벽을 부수고 나면 나타나는 것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이라는 사실에 부닺히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견해
6장은 여러 사람들의 의식에 존재하는 관념들이 어떻게 인류 사회에 실질적, 아니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조정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농업은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게 만들고, 이런 걱정으로 인간들은 미래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이런 잉여 식량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보장을 위한 지배체계는 오히려 인간들을 착취와 억압의 굴레로 몰아넣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는 말이 있는데, 미래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현재의 우리를 비참한 상태로 묶어놓게 되는 것일까요?
잉여 식량은 집단 생활을 가속화시켜, 인구증가가 지속되면서 촌락, 도시, 왕국을 거쳐 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화롭게 협동하기 위해서 역시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데, 신화도 조상신이나 부족의 토템에서부터 전지전능한 신이나 법률과 같은 것들에 대한 스토리로 발전합니다. 이런 신화는 객관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실제하지 않는 것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가집니다. 실제하지 않는 것이 지배를 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강력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처럼 다가옵니다.
이런 신화를 통해 조직된 질서에 의해 이익을 보는 지배층들은 신화의 열열한 추종자가 됩니다. 추종자들이 있어야 신화는 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신화들은 수많은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게 됩니다. 이런 신화들은 물질세계에 대한 영향력과 인간의 욕망을 제단하여 그 자신의 영속성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언어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여러 인간들의 의식에 퍼져버린 신화는 한 두 개체의 노력으로 변화가 되지 않고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단 국가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독재국가의 사상적으로 경도된 집단주의 시스템에서 지내온 나와 나와 같은 시대를 지내온 한국인이라는 사피엔스들을 지배하는 신화에 대한 거북함과 일종의 두려움이 들게 되었습니다. 감옥을 벗어나도 또 다른 커다란 감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일종의 저주처럼 들리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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