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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9.12.24.

 

이 글은 생각다듬기 독서 동호회에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 토론을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점도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스승들 - 왜 그들은 축의 시대에 등장했는가

몽둥이를 내려놓고 깊은 내면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아와 세계의 본질 속에서 스스로 깨달아야함을 일깨워주게되었는데, 이들을 위대한 스승들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2500년 경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위대한 스승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아마도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인해 경제, 정치, 사회적 갈등의 폭증이 자연스러운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의 가르침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와 함께 전해진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의해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대전, 냉전, 물질 중심의 시장경제 속에서 우리들의 혼란과 고통은 가중되게 된다. 아마 혼란과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축의 시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

동호회 슬랙에 검색 창에 축의 시대를 검색해보시면 여러군데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던 것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잘 알려진 용어이기도 한데요. 이번 달 영어원서읽기 모임에서도 축의 시대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고요. 채사장은 사회 안에 인간의 갈등이 결국에는 이런 축의 시대를 촉발하게된 근원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인문고전에서 읽고있는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도 도덕적 판단을 하는 감정의 등장은 사회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하는 것 같고요. 어쨌든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갈등은 우리가 생각하게 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동호회 안에서 토론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도 인간답게 그리고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더 응원합니다.

역사적 배경 -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절반

인도로 이동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고대 인도인을 구성하는 아리아인들에게는 베다가 있었는데, 베다는 구약과 더불어 인류에게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문서가 되었다. 베다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지는데, 자연, 신, 사제, 인간은 서로서로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 에서 베다에는 사제가 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사의 상세한 방법들을 기술하였기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베다는 크게 상히타라는 핵심경전과 부속 경전으로 이루어지며, 상히타는 리그베다, 시마베라, 야주르베다, 아타라바베다가 있으며, 부속 경전에는 바라흐마나, 아라니아카, 우파니샤드가 있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카스트의 정점이 있으며,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리고 불가촉 천민으로 인간들은 계급 구조를 이루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일라아스에서도 마치 인간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인간의 호불호를 중요시 생각하는 신들의 모습이 매우 의아하게 여겨졌는데요, 베다의 세계관도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다른 시각으로보면 인간도 신과 존재론적인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고, 단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서로 간의 연간성이 있다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그래도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월등한 능력의 차이가 나는 인간을 그렇게까지 존중해야할 필요성이 있나라는 궁금중이 더해집니다. 마치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수많은 일들이 있을텐데, 고작 인간의 선악에 그렇게 직찹(?)해야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인간에 연연하는 신이 잘 받아들여지시나요? 아니면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고대의 불완전한 사상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베다의 신화 - 신에 대한 세 가지 구분

베다에는 다신론, 유일신론, 범심론을 모두 포함한다. 다신론에는 하늘, 중간, 땅으로 구분된 자연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신들로 구성되며, 유일신은 창조주인 유일한 지배자 신이며, 범심론에서는 우주의 근본원리나 거대법칙으로 대변되는 신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의 기원을 신이라는 종교적인 범주에서 설명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기에 철학적인 논의가 등장하게 되고, 우파니샤드가 정리되게 된다. 우파니 샤드는 인격신으로 서술된 브라흐마를 철학적 개념인 브라흐만으로 치환시키며, 전체인 우주와 개체인 자아가 어떠한 관걔를 맺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해준다.

개인적인 생각

언젠가 흰두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세계관이 녹아들어 자유롭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요. 범신론, 유일신론, 다신론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에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일신이 다신들을 만들어서 인간과 차별화된 능력을 부여할 수는 있고, 인간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고까지 설명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유일신과 범신론의 접합적은 도저히 생각해보기 힘들군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 분 계신가요?

일원론의 시작 - 고대 인도인이 찾은 궁극의 지혜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핵심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선명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심오한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데, 지역과 시대를 넘어 인류의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된다. 우파니샤드의 탐구주제는 세계, 자아, 그리고 그 둘의 관계인데, 세계는 브라흐만, 자아는 아트만이라는 의식으로 이 둘은 각각 불변의 근원지만, 사실은 하나라고 보는 범아일여를 주장한다.

개인적인 생각

심오한 사유의 세계로 초대를 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많이 되는데요. #도서 소개란에 한번 읽어보고 싶은 서적으로 우파니샤드를 올리기도 했는데요. 혼자서는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여행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번 같이 읽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범아일여의 일원론은 저에게 어렵기만한데요. 채사장이 앞으로 그것을 풀어갈 것이라고 하니 또한 기대가 됩니다.

범아일여의 현대적 의미 - 자아, 세계 그리고 관계

베다, 우파니샤드, 베단타 철학 혹은 흰두교라고 각각 다르게 불리우는 인도의 철학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범아일여의 사상이다. 본질적인 것을 제외하고 모두 벗어버리면 내면을 경험하는 능력의 텅빈 의식이 남는데, 이것이 바로 아트만이며, 이 아트만의 관점에서 세상은 그 텅빈 의식이 비춰지는 범위라는 것이다. 서양 철학의 실재론과 대비되는 관념론과 비슷하다. 이 관념론은 세계와 자아가 독자적이라는 이원론이 아닌 세계와 자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일원론으로 환원하는데, 바로 범아일여의 사상이 된다. 결국 자아의 의식과 우주의 이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아무래도 실재론적인 입장을 가지다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을 하나 제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개개인이 각자의 텅빈 의식을 가지고 있고, 세계는 그 의식이 비추는 범위라고 한다면, 이를 객관화하여 개인적인 범주에서는 자신의 의식 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인식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의 인식의 영역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의 해석이지 않는가 싶네요. 저를 둘러싼 그 모든 사람들이 저를 위한 일종의 연극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었는데요. 만약 그런게 아니라면, 한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는 존재하며, 그 개인이 죽어서 자의식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속에는 존재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최근에 잃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뇌기능의 이상으로 자의식을 상실해가는 사람이 있는데, 제 삼자의 관점에서는 의식이 그 비추는 범위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변화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존재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범아일여 어떻게들 보셨나요?

사회적 영향 - 내면을 탐구하는 자들의 세계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권위에 벗어나 개인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로인해 전통적인 권위를 중시하는 바르흐마니와 달리 자신의 수련을 통해 영혼을 정화시키려하는 슈라마나가 생겼다. 바르흐마나는 바라문, 슈라마나는 사문이라고 불리우는데,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했다면 바라문이던 사문이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

이 부분을 읽고 @오브진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했는데요.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예기에 계신 책을 좋아하시는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아마도 사문이 아니깔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내면 깊숙히는 아니더라도 세계와 자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많으시니 사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혹시 바라문이신 계신가요?

우파니샤드의 문제 - 모든 종교가 갖게 되는 고민

자기 내면을 스스로 깨닫고자하는 사문의 증가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공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억압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종교나 사상의 선택지는 서라지거나 적응하는 방법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마치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가 발생하듯이 사회의 선택에 의해 종교와 사상도 살아남는 것이므로 이는 종교와 사상이 사회적인 것이지 결코 살아남은 것들이 진리에 가까워서인 것은 아닌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의 경우에는 바가바드 기타가 이런 개인의 깨달음에 대한 지향과 국가 안에서의 의무 이행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를 조화롭게 해준다.

개인적인 생각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종교나 사상을 전파시키는 밈이라는 유전자와 비견할만한 개념을 내놓는데요. 여러모로 설득력이 있는 개념이었던 같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유전자와 같이 대를 거듭해서 물려주고, 지속적으로 변형이 가능하다면, 개체가 속해있는 사회 환경에 의해 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로의 생각의 확장은 신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종교나 사상이 변하지 않는 진리에서 발생해서 발전해온 것이라기보다, 당시 사회와 개인의 상호작용에 가장 부합되는 것들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았다고 봅니다.

 

바가바드 기타 - 세속과 탈속의 화해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라타라는 대서사시의 절정으로 흰두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전쟁 중에 친족을 공격해야하는 왕자 아루주나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전쟁을 포기하려했을때, 크리슈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 신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설득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결국 세속과 탈속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타협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면 그럴듯 해보이지만, 사상이나 종교가 무서운 극단주의에 빠질 수 있도록 하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야 어떻든 나는 종교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인해, 유태인 학살, 급진 이슬람의 무차별 테러, 민족주의를 기반으로한 소수민족의 학살 등등도 결과를 돌아보지 않는 자신의 의무에 최선을 다히는 길의 휴유증이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너무 단순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일 수 도 있는데요. 어쨌든 사회의 선택을 받기 위해 행해진 타협으로 본다면, 인류 평화에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흰두교의 세계관 - 인도 정신의 종합

흰두교는 보편의 사유를 담고 있는 인류의 오래된 유산인 인도 사상을 기반으로 한느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탈속과 세속이라는 모순된 가치를 종합하는 사상 체계로 어쩌면 사상 체계면에서는 세련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흰두교의 세계관은 우주와 자아라는 두가지 근본 구조는 기본적으로 우주의 다르마에 의해 생성, 유지, 소멸을 반복하는 윤회의 틀에 있다는 것이다. 흰두교는 베다의 전통 안에서 범아일여의 진리를 받아딜여 나의 의지와 행위가 우주의 의지이자 질서가 될때, 우리는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 안에서 행위를 할때,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빠져들듯이 읽다보니 베다 편이 마무리 되었군요. 그동안 낯설었던 흰두교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뿌듯해지기는 했는데, 알게 된 것 만큼 새로운 궁금증들도 생겨난 것 같은 느낌에 숙제가 들어난 것 같습니다. 책장에 모셔둔 우파니샤드를 어서 읽어야만 할 것 같군요.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꼭 필요한 지는 모르겠으나, 깨달음과 그에 기반한 행위는 어떤 컨텍스트에서나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조금 더 합당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위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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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9.12.24.

 

이 블로그는 생각다듬기 독서 동호회에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 토론을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점도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프롤로그

파잔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으로 코끼리는 자유를 향한 자기 목소리와 혼란한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생존의 방법임을 터득한다. 파잔 의식을 행하는 인간들도 역시 영혼이 파괴된 또 하나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영혼이 파괴되어 어떤 곳에서는 매맞는 코끼리이자 어떤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가해자일지 모른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현대를 관통하는 인류들도 역시 영혼이 파괴되어 서로에게 코끼리이기도 몽둥이를 든자이기도 하다. 이 혼돈에서 현명한자가 나타나서 인간을 인간답게 했는데 이들을 위대한 스승이라고 한다. 현대인이 고전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위대한 스승을 만나 그들의 지혜를 참고하여 내 안의 혼란을 멈추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것

위대한 스승들과 거대 사상이 이 책의 핵심이다. 위대한 스승들은 올바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었는데, 이 책은 축의 시대에 활동한 현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된다. 거대 사상은 위대한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아와 세계가 실제로는 하나라는 일원론이다. 이책의 목표는 이 일원론을 마음 속에서 깊이 체험케하는 것이다. 이책의 등장인물은 위대한 스승들이고, 중심소재는 거대 사상이며, 결론은 세계와 자아의 통합으로서의 일원론이다. 1-2장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다루고, 3-7장은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다루는데, 3-5장은 동양의 관점에서 6-7장은 서양의 관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거대 사상이 윤곽을 더듬어보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사고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학과 역사, 철학과 종교,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거대한 사유를 준비한 책이다.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접하다보면, 우리의 다양한 생각의 근본적인 원리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었는데요. 이 근본적인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몇 않되는 책이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게 되네요. 저자가 이 책의 대상으로 선정한 사람들 중에 “세계에 대한 거대한 맥락이 궁금한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는 것 같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시나요?

 

준비운동 - 세계의 구조화와 판단중지

세계의 구조화란 세계를 추상화하여 단순하게 바라보는 과정이다. 세계의 근본 구조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자아와 세계로 나누는 것은 좀더 근원적인 구분이 될 수 있는데,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판단중지란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선입견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이든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게 마련이다. 위대한 스승들이 찾아낸 거대한 사상을 온전히 습득하기 위해서는 이런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아와 세계에 대해 위대한 스승들은 내면의 성찰을 통해 외연으로 초월해나가면서 이 두가지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일원론적 통합적 세계인 것이다. 이런 통합은 부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상식적이고 초월적인 결론으로 토론과 논쟁을 부질없이 만들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개인적인 생각

저는 개인적으로 세계관이 뚜렷한 편입니다. 약간 어울리지는 않지만, 기독교 세계관과 진보라는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관에 관련된 토론이나 논쟁에 휘말리게되면 본의 아니게 전투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판단을 심하게 하는 편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판단을 중지하고 마음을 열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일원론의 논리가 전개되면, 일종의 허무주의로 빠져들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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