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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9.12.24.

 

이 글은 생각다듬기 독서 동호회에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 토론을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점도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스승들 - 왜 그들은 축의 시대에 등장했는가

몽둥이를 내려놓고 깊은 내면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아와 세계의 본질 속에서 스스로 깨달아야함을 일깨워주게되었는데, 이들을 위대한 스승들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2500년 경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위대한 스승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아마도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인해 경제, 정치, 사회적 갈등의 폭증이 자연스러운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의 가르침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와 함께 전해진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의해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대전, 냉전, 물질 중심의 시장경제 속에서 우리들의 혼란과 고통은 가중되게 된다. 아마 혼란과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축의 시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

동호회 슬랙에 검색 창에 축의 시대를 검색해보시면 여러군데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던 것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잘 알려진 용어이기도 한데요. 이번 달 영어원서읽기 모임에서도 축의 시대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고요. 채사장은 사회 안에 인간의 갈등이 결국에는 이런 축의 시대를 촉발하게된 근원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인문고전에서 읽고있는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도 도덕적 판단을 하는 감정의 등장은 사회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하는 것 같고요. 어쨌든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갈등은 우리가 생각하게 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동호회 안에서 토론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도 인간답게 그리고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한번 더 응원합니다.

역사적 배경 -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절반

인도로 이동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고대 인도인을 구성하는 아리아인들에게는 베다가 있었는데, 베다는 구약과 더불어 인류에게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문서가 되었다. 베다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지는데, 자연, 신, 사제, 인간은 서로서로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 에서 베다에는 사제가 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사의 상세한 방법들을 기술하였기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베다는 크게 상히타라는 핵심경전과 부속 경전으로 이루어지며, 상히타는 리그베다, 시마베라, 야주르베다, 아타라바베다가 있으며, 부속 경전에는 바라흐마나, 아라니아카, 우파니샤드가 있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카스트의 정점이 있으며,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리고 불가촉 천민으로 인간들은 계급 구조를 이루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일라아스에서도 마치 인간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인간의 호불호를 중요시 생각하는 신들의 모습이 매우 의아하게 여겨졌는데요, 베다의 세계관도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다른 시각으로보면 인간도 신과 존재론적인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고, 단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서로 간의 연간성이 있다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그래도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월등한 능력의 차이가 나는 인간을 그렇게까지 존중해야할 필요성이 있나라는 궁금중이 더해집니다. 마치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수많은 일들이 있을텐데, 고작 인간의 선악에 그렇게 직찹(?)해야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인간에 연연하는 신이 잘 받아들여지시나요? 아니면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고대의 불완전한 사상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베다의 신화 - 신에 대한 세 가지 구분

베다에는 다신론, 유일신론, 범심론을 모두 포함한다. 다신론에는 하늘, 중간, 땅으로 구분된 자연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신들로 구성되며, 유일신은 창조주인 유일한 지배자 신이며, 범심론에서는 우주의 근본원리나 거대법칙으로 대변되는 신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의 기원을 신이라는 종교적인 범주에서 설명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기에 철학적인 논의가 등장하게 되고, 우파니샤드가 정리되게 된다. 우파니 샤드는 인격신으로 서술된 브라흐마를 철학적 개념인 브라흐만으로 치환시키며, 전체인 우주와 개체인 자아가 어떠한 관걔를 맺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해준다.

개인적인 생각

언젠가 흰두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세계관이 녹아들어 자유롭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요. 범신론, 유일신론, 다신론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에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일신이 다신들을 만들어서 인간과 차별화된 능력을 부여할 수는 있고, 인간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고까지 설명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유일신과 범신론의 접합적은 도저히 생각해보기 힘들군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 분 계신가요?

일원론의 시작 - 고대 인도인이 찾은 궁극의 지혜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핵심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선명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심오한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데, 지역과 시대를 넘어 인류의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된다. 우파니샤드의 탐구주제는 세계, 자아, 그리고 그 둘의 관계인데, 세계는 브라흐만, 자아는 아트만이라는 의식으로 이 둘은 각각 불변의 근원지만, 사실은 하나라고 보는 범아일여를 주장한다.

개인적인 생각

심오한 사유의 세계로 초대를 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많이 되는데요. #도서 소개란에 한번 읽어보고 싶은 서적으로 우파니샤드를 올리기도 했는데요. 혼자서는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여행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번 같이 읽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범아일여의 일원론은 저에게 어렵기만한데요. 채사장이 앞으로 그것을 풀어갈 것이라고 하니 또한 기대가 됩니다.

범아일여의 현대적 의미 - 자아, 세계 그리고 관계

베다, 우파니샤드, 베단타 철학 혹은 흰두교라고 각각 다르게 불리우는 인도의 철학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범아일여의 사상이다. 본질적인 것을 제외하고 모두 벗어버리면 내면을 경험하는 능력의 텅빈 의식이 남는데, 이것이 바로 아트만이며, 이 아트만의 관점에서 세상은 그 텅빈 의식이 비춰지는 범위라는 것이다. 서양 철학의 실재론과 대비되는 관념론과 비슷하다. 이 관념론은 세계와 자아가 독자적이라는 이원론이 아닌 세계와 자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일원론으로 환원하는데, 바로 범아일여의 사상이 된다. 결국 자아의 의식과 우주의 이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아무래도 실재론적인 입장을 가지다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을 하나 제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개개인이 각자의 텅빈 의식을 가지고 있고, 세계는 그 의식이 비추는 범위라고 한다면, 이를 객관화하여 개인적인 범주에서는 자신의 의식 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인식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의 인식의 영역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의 해석이지 않는가 싶네요. 저를 둘러싼 그 모든 사람들이 저를 위한 일종의 연극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었는데요. 만약 그런게 아니라면, 한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는 존재하며, 그 개인이 죽어서 자의식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속에는 존재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최근에 잃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뇌기능의 이상으로 자의식을 상실해가는 사람이 있는데, 제 삼자의 관점에서는 의식이 그 비추는 범위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변화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존재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범아일여 어떻게들 보셨나요?

사회적 영향 - 내면을 탐구하는 자들의 세계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권위에 벗어나 개인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로인해 전통적인 권위를 중시하는 바르흐마니와 달리 자신의 수련을 통해 영혼을 정화시키려하는 슈라마나가 생겼다. 바르흐마나는 바라문, 슈라마나는 사문이라고 불리우는데,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했다면 바라문이던 사문이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

이 부분을 읽고 @오브진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했는데요.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예기에 계신 책을 좋아하시는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아마도 사문이 아니깔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내면 깊숙히는 아니더라도 세계와 자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많으시니 사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혹시 바라문이신 계신가요?

우파니샤드의 문제 - 모든 종교가 갖게 되는 고민

자기 내면을 스스로 깨닫고자하는 사문의 증가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공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억압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종교나 사상의 선택지는 서라지거나 적응하는 방법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마치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가 발생하듯이 사회의 선택에 의해 종교와 사상도 살아남는 것이므로 이는 종교와 사상이 사회적인 것이지 결코 살아남은 것들이 진리에 가까워서인 것은 아닌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의 경우에는 바가바드 기타가 이런 개인의 깨달음에 대한 지향과 국가 안에서의 의무 이행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를 조화롭게 해준다.

개인적인 생각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종교나 사상을 전파시키는 밈이라는 유전자와 비견할만한 개념을 내놓는데요. 여러모로 설득력이 있는 개념이었던 같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유전자와 같이 대를 거듭해서 물려주고, 지속적으로 변형이 가능하다면, 개체가 속해있는 사회 환경에 의해 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로의 생각의 확장은 신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종교나 사상이 변하지 않는 진리에서 발생해서 발전해온 것이라기보다, 당시 사회와 개인의 상호작용에 가장 부합되는 것들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았다고 봅니다.

 

바가바드 기타 - 세속과 탈속의 화해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라타라는 대서사시의 절정으로 흰두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전쟁 중에 친족을 공격해야하는 왕자 아루주나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전쟁을 포기하려했을때, 크리슈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 신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설득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결국 세속과 탈속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타협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면 그럴듯 해보이지만, 사상이나 종교가 무서운 극단주의에 빠질 수 있도록 하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야 어떻든 나는 종교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인해, 유태인 학살, 급진 이슬람의 무차별 테러, 민족주의를 기반으로한 소수민족의 학살 등등도 결과를 돌아보지 않는 자신의 의무에 최선을 다히는 길의 휴유증이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너무 단순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일 수 도 있는데요. 어쨌든 사회의 선택을 받기 위해 행해진 타협으로 본다면, 인류 평화에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흰두교의 세계관 - 인도 정신의 종합

흰두교는 보편의 사유를 담고 있는 인류의 오래된 유산인 인도 사상을 기반으로 한느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탈속과 세속이라는 모순된 가치를 종합하는 사상 체계로 어쩌면 사상 체계면에서는 세련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흰두교의 세계관은 우주와 자아라는 두가지 근본 구조는 기본적으로 우주의 다르마에 의해 생성, 유지, 소멸을 반복하는 윤회의 틀에 있다는 것이다. 흰두교는 베다의 전통 안에서 범아일여의 진리를 받아딜여 나의 의지와 행위가 우주의 의지이자 질서가 될때, 우리는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 안에서 행위를 할때,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빠져들듯이 읽다보니 베다 편이 마무리 되었군요. 그동안 낯설었던 흰두교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뿌듯해지기는 했는데, 알게 된 것 만큼 새로운 궁금증들도 생겨난 것 같은 느낌에 숙제가 들어난 것 같습니다. 책장에 모셔둔 우파니샤드를 어서 읽어야만 할 것 같군요.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꼭 필요한 지는 모르겠으나, 깨달음과 그에 기반한 행위는 어떤 컨텍스트에서나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조금 더 합당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위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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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9.12.24.
 

이 글은 생각다듬기 독서 동호회에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 토론을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점도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우주의 시작 - 어떻게 빅뱅 이론을 증명했을까

허블은 적색 편이 현상을 바탕으로 우주가 팽창한다고 생각했고, 가모프는 팽창하기 위해서는 빅뱅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펜지어스와 윌슨은 안테나의 잡음을 바탕으로 빅뱅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를 찾아내서 노벨상을 받았고, 빅뱅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빅뱅에 관련된 과학자들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천재적인 생각은 매우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바쁜 일상 들이지만, 주변의 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충분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네요.

 

빅뱅 이후의 역사 - 0초부터 138억 년까지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 정도로, 높은 밀도와 에너지를 가지던 초기 상태에서 대략 1초동안 급팽창하면서 중력과 강력이 분리되고, 중성자와 양성자가 형성이 된다. 3분까지는 핵융합으로 수소와 헬륨이 풍부해지고, 38만 년까지는 우주가 팽창을 하다가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하면서 광자가 산란을 하지 않아 빛이 우주 공간에서 여행을 할 수 있겠되었다. 4억년 정도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화된 상태를 지나 항성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항성과 은하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80억년 무렵 태양계가 형성이 되고, 92억년 무렵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이후에 안정화되며 생명을 잉태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

우리 동호회에서 읽은 사피엔스와 시간은 흐리지 않는다에서도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의 탄생시기까지를 설명한 부분들이 있는데요. 유명한 그 책들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을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 전공인 저자가 이 정도로 쉽게 설명을 하기위해서는 상당한 공부를 했을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우주의 크기 - 너무도 큰 공간 속 너무도 작은 존재

우주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방대해서 인간은 상대적으로 미비한 존재로 비추어지므로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위해 신을 상정하는등 인간중심주의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의식에 의해 세계가 정의되는 것이라면 이런 인간중심주의도 참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인류가 우주 상의 유일한 의식적 존재라면 우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론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이야기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먼저, 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의 고유의 것이라는 것 견해도 신이 특별하게 인간을 창조했다는 견해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이는데요. 다양한 동물 심리 연구의 자료를 비추어보면 의식이라는 것이 고도화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만이 독보적으로 소유한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책에서는 이간이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해 의식을 고도화로 발전을 시켰는데, 일종의 퇴행일수도 있으며, 본능에 충실해보이는 단순한 동물들이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일 수 도 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채사장님은 인간중심주의 신봉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구의 탄생 - 충돌과 동반자 그리고 지질 시대

태양계의 성운들은 회전을 하면서 중심으로 뭉쳐 태양을 형성하고 중심으로 뭉쳐지지 않은 물질들은 따로 뭉쳐지면서 행성들을 만드는데, 지구는 세번째 행성으로 우주탄생 92억년 만들어진 다음 1억년 후에 테이아와 충돌하면서 자전축이 기울어지고 나머지 파편들은 달이 된다. 지구 탄생 직후 8억년 간의 관측이 불가능한 명왕누대, 32억년간의 화석이 발굴되지 않는 은생누대, 그리고 화석이 발견되는 6억년 간의 현생누대로 지질시대를 구분한다. 화석이 없기는 하지만 은생누대에 이미 원시적인 형태의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약 28억년 전에 원시 박테리아가 산소를 발생시켜 지구를 채웠을 것으로 보인다. 약 6억년 전 빙하기가 마무리되면서 생명체의 진화가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태양계의 성운이 회전을 하면서 태양과 행성들은 댜략 천만년 미만의 시간 간격 안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채사장은 2억년 정도의 차이를 두는군요. 대학 시절 전공이 지질학이라 그런지 까칠해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은사님이 강의 시간에 하신 “나는 오늘 지구의 역사에 대한 아무말이라도 할 수 있어. 왜냐하면 아무도 과학적 증거로 반박할 수 없으니깐... ” 말씀이 기억이 나면서 일단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논박을 하자면 어차피 빈약한 근거에 의해 씌여진 문헌에 대한 믿음에 대한 투쟁이 될 뿐이니깐요. ㅎㅎ

 

생명의 탄생 -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생명의 탄생은 생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동반하는데, 화학적 진화론은 논리적 비약과 물질에 생명을 제안한다는 한계가 있어, 아직까지 많은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다. 한편, 현생누대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뉘머 고생대와 중생대 말에는 대멸종을 걲으면서 다음 대로 넘어가게 되는데, 고생대는 무척추동물의 새대, 중생대는 공룡과 같은 파충류의 시대, 신생대는 포유류와 조류이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생명의 탄생과 관련된 철학적인 담론은 많은 부분 동의를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명의 정의가 오히려 더 희미해진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여러분들은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저는 대학원 시절 로봇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특정 표식을 인식하면 그 표식을 따라다니는 프로그램을 탑재해서 실험한 적이 있는데요. 표식을 가지고 있는 저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로봇을 보면서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성공적이었다는 기쁨보다는 나의 어떤 행동에도 동적으로 반응하는 로봇을 보면서 내가 일종의 의지를 가진 그 무언가를 만든 것은 아닌가하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튜링의 인공지능 테스트도 역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데요. 그 테스트는 인공지능의 완성도에 대한 테스트인데, 로봇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로봇과 상호작용을 한 후에 그 상호작용의 대상이 인간인지 로봇인지 구분할 수 없으면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가진 인공지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인간들이 인간으로 인식한다면, 그게 로봇인지 인간인지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화에 대하여 - 진화론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을만큼 진화론은 친숙하지만, 의외로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라마르크의 용불용성로 알려진 획득형질의 유전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자연선택설에 의하면 단지, 자연적인 환경에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생존과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해당 형질들이 많아지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이다. 한편,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동물, 세균, 곰팡이, 어류, 파충류, 포유류, 유인원, 인간을 일렬로 세워놓고 진화가 마치 좀더 단순한 생물에서 고등한 생물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오해다. 진화는 실제로 방사형의 형태를 띄고, 각각의 생물들은 여전히 진화의 과정에 있으며, 주어진 환경 내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자 풀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인적인 생각

저는 학부 시절 전공이 지질학, 그것도 고생물학이어서 진화에 대한 지식을 좀더 심도있게 접할 수 있었는데요. 책에 언급된 두가지 오해에 대한 논쟁은 사실 각각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지적한대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연선택을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사상 진화에 대한 개념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았죠. 사실 고등학교 과학책에 다 나오는데요. ㅋㅋ

 

한가지 더 고민해볼 부분은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창조론과의 관계인데요. 종교에 관련된 부붙이라 민감하기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성경이 설명하는 창조론을 직간접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시는지 살짝 물어보고 싶네요. 대신 반론이나 설득은 하지 않겠습니다.

 

인류의 탄생 - 각지로 퍼져나간 현생인류

인류와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로 600만년 전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는 원인, 원인, 구인, 신인인 4부류로 구분이 되고, 원인은 300만년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두번째 원인은 150만년전 호모에렉투스가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량은 커졌는데, 요리를 통한 소화효율의 향상으로 뇌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었다. 20만년 전에는 구인인 네안데르탈렌시스와 인류의 조상인 프레사피엔스가 있었고, 4만년 전쯤에 이르러 신인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징하고, 구인류는 멸종, 신인류는 지구 곳곳으로 퍼쳐나간다.

 

개인적인 생각

인간의 뇌용량이 커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이론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왔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채사장은 단지 인간의 뇌의 크기에 비례하여 에너지 공급량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유발 하라리는 뇌와 소화를 하는 장기들의 에너지 경쟁이라는 구조를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채식에서 유식으로의 전환, 요리를 통해 음식물의 가공으로 음식물 소화에 들어가는 장기들의 에너지가 줄어들어 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아졌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소화 효율의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미세한 차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명의 탄생 - 세계 4대 문명과 인간의 삶

세계 4대 문명은 오래된 순서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청동기 문명으로 문자를 사용하고 거대한 도시국가를 형성했다. 정작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이들이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어보면 서구 유럽국가의 성공은 유전적인 우월함이라기 보다는 지리적 이점과 우연에 좌우되었다는 주장 속에 기존의 인종별 차이를 주장하는 인종차별적인 견해에 반론을 제시합니다. 실제로 인간의 DNA는 다양한 인종들 간에도 많은 부분이 공통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호주 원주민이나 서구 유럽인들의 차이는 그들의 현재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지요. 아마 초기 문명시대의 인간들도 그런 관점에서 현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 인간에 대한 가장 오래된 보고서

반신반인인 길가메시는 왕이 되어 치기어린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신들의 형벌로 내려온 엔키두를 만나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엔키두와 친구가 되어 세상을 유랑하며 추억을 만들어간다. 이시타르의 유혹을 거부하나 이것은 또 다르 시련이되고,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나이 듦에 따라 영생을 추구하나 결국 덧없이 죽어가게 된다. 이런 모습은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 존재의 보편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 5천년 전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생각

최근에 개봉된 이터널스에 한국인 영화배우 마동석이 길가메시로 나온다고 하던데요. 길가메시 서사시 여러 연유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천년 전의 길가메시의 일생 속에 나오는 그의 희노애락과 갈구는 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채사장은 주장하는데, 저는 그렇게 해석이 된다고 보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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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9.12.24.

 

이 블로그는 생각다듬기 독서 동호회에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 토론을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점도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주의 탄생 - 왜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려 하는가

현대 종교적 과학적 우주론은 서로 상충되며 부합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정작 고민해봐야하는 부분은 왜 우리가 우주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이며, 이에 대한 우주의 자기반성이라는 관점에 대한 위대한 스승의 답변들을 빅뱅 이전의 시간에서부터 시작해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

빅뱅이 종교적인 해석과 잘 부합할 수 있어서 세상에 잘 받아들여졌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마스 쿤이 “과학형명의 구조”에서 설명했던 과학의 발전이 세상의 패러다임에 의해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설명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는데, 왜 그런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단지 “모든 현상의 근본 원리를 알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라는 좌우명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것도 우주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간 이전의 시간 - 다중 우주와 평행 우주

현대 물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다중 우주론은 근대 과학의 합리성에 익숙한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현대 물리학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활발히 연구가 되고 있는데, 시공간 상에 우주는 확장과 팽창, 그리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하나의 우주인 유니버스가 아닌 여러 우주인 멀티버스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계관을 정립하여 앞으로 논의할 위대한 스승들의 이야기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빅뱅 이전의 시간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갈 지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는 글을 읽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엉뚱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요. 쓰잘데기 없는 질문한다고 공부나 열심히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 있는 아이에게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저도 비슷하게 답변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조금 반성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중 우주론이나 상대성 이론, 그리고 양자역학 등이 우리의 이성을 흔드는 현대 물리학의 대세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전 물리학이라 부리우는 뉴턴 물리학이라는 색안경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주 너머의 우주 - 우주가 여러 개라는 몇가지 모델

다중 우주론을 유형에 따라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우주 너머의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레벨1의 우주론, 레벨 1의 텅빈 공간에서 양자 요동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균형의 붕괴로 여러 우주가 지속적으로 생성한다는 레벨 2의 우주론, 관찰자의 의식이 미시세계의 영향을 미쳐 수많은 우주로 분화되는 레벨 3의 우주론, 우주의 실체가 수학이라는 레벨 4의 우주론 외에 초공간을 상정하고 이곳에 존재하는 5차원의 브레인 막들의 충돌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설명하는 브레인 우주른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

쉽지 않은 다중 우주론을 아주 쉽게 잘 풀어 설명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자가 인용한 맥스 테그마크의 분류가 모든 우주론들을 완벽히 특징 별로 분류해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 우주론에 대한 지식이 희박했던 저에게는 체계를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레벨 3 우주론에서 언급이 되었던 의식이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과학적인 설명이 던져주는 화두였습니다. 이런 비슷한 유형의 주장은 매트릭스나 더 맨 인더 하이캐슬과 같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의식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과도 연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 질문하기 이른 것 같지만,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의식이 있음으로 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으시나요? 아니면 물질의 존재가 우선이고 그 물질의 분화에 따라 의식이 나타난다고 보시나요?

 

차원에 대하여 - 0 차원에 대한 상상

익숙하지 않은 다중 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차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데, 이는 우리에게 인문학적 영감을 불러 일으켜 사유의 확장을 통한 통찰력을 키워줄 수 있을지 모른다. 특히, 시공간의 점유없이 존재하는 0 차원은 세계와 나를 구분하지 않는, 존재와 부재를 구별하지 않아,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신이나 자아일 수 있는 보다 일원론적인 존재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

저는 물질적인 세상이 우선적으로 존재하고 차원을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수학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채사장이 이야기하는 0차원의 화두가 흥미로왔습니다. 직관적으로 인식이 가능한 1, 2, 3, 차원부터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의 차원이라고 이야기하는 11, 12차원까지의 분화는 추가되는 차원의 좌표축은 기존의 좌표축과 모두 수직이라는 재귀구조를 가지므로 그 재귀구조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차원이 나타나면 12차원 이상으로 확장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괴델은 불완정성 정리에서 이런 재귀적 열거 가능성을 중요시했고, 우리가 모임에서 악명을 날리셨던 촘스키 역시 언어 문법에도 재귀적 열거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0차원은 어떻게 보면 이 재귀 구조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괴델이 이야기한 수학 시세템이 결정 불가능한 명제에 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0차원에 대한 고려는 분명 사유의 확장과 철학적 통찰력을 키워주기는 할 것 같네요. 존재와 부재가 구별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은 신이나 자아일 수 있다는 이야기... 왠지 모순되는 문장이지 않나요? 존재와 부재과 구별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그 무엇. 하하 쉽지 않네요. 누가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했나요.

 

다중 우주론이 해결하는 문제 - 우주가 하필 지금의 모습인 이유

우리가 속한 우주는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지 위해 여러가지 것들이 세밀하게 조종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중 우주론에서는 다양한 우주의 분화가 가능하므로 세밀하게 조종이 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같은 상태로 우연히 우주가 탄생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다중 우주론이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더 골치아픈 문제들을 던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확실히 미세조정의 문제에는 논리적으로 훌륭한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다중 우주의 초기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라는 단순한 질문부터, 그 다중 우주 분화 이전의 세계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한 질문 등등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가지 더 궁금한 것은 볼츠만 상수나 플랑크 상수, 중력 상수 역시 헌재의 시공간에 관측된 것일뿐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다중 우주론의 확률적 설명 외에도 우리의 인식의 확장으로 그 근본 원리들을 알아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인식의 한계로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인간 중심 원리 - 우주의 존재 이유와 인간

우리가 지금의 왜 지금의 우주에 존재하는가를 인간의 존재로부터 역으로 추론하여 설명하는 것을 인간 중심의 원리라고 하는데, 다중 우주론에 의한 무수한 우주 중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우주가 생성된 것이라는 약한 인간 중심의 원리 외에, 우주의 존재는 관찰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강한 혹은 참여 인간 원리가 존재합니다. 이 관찰자는 동양과 서양의 거대 사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

슬슬 어지러워진다고 생각했는데, 우주론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우주론에서부터 시작해서 존재론과 인식론까지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10차 모임 서적으로 읽었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라는 현대 물리학이 고전 물리학이 주는 합리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채사장도 위대한 스승들의 거대 사상이라는 담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기반하는 고전 물리학의 합리성을 허물려고 하는 시도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혹은 믿었던 고전 물리학 기반의 합리성을 현대 물리학에 의해 도전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색안경을 벗는 판단중지를 시도해야한다는 것, 어떻게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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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저자 채사장
출판 웨일북(whalebooks)
발매 2019.12.24.

 

이 블로그는 생각다듬기 독서 동호회에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편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 토론을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점도 이해주시기 바랍니다.

 

프롤로그

파잔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으로 코끼리는 자유를 향한 자기 목소리와 혼란한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생존의 방법임을 터득한다. 파잔 의식을 행하는 인간들도 역시 영혼이 파괴된 또 하나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영혼이 파괴되어 어떤 곳에서는 매맞는 코끼리이자 어떤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가해자일지 모른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현대를 관통하는 인류들도 역시 영혼이 파괴되어 서로에게 코끼리이기도 몽둥이를 든자이기도 하다. 이 혼돈에서 현명한자가 나타나서 인간을 인간답게 했는데 이들을 위대한 스승이라고 한다. 현대인이 고전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위대한 스승을 만나 그들의 지혜를 참고하여 내 안의 혼란을 멈추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것

위대한 스승들과 거대 사상이 이 책의 핵심이다. 위대한 스승들은 올바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었는데, 이 책은 축의 시대에 활동한 현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된다. 거대 사상은 위대한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아와 세계가 실제로는 하나라는 일원론이다. 이책의 목표는 이 일원론을 마음 속에서 깊이 체험케하는 것이다. 이책의 등장인물은 위대한 스승들이고, 중심소재는 거대 사상이며, 결론은 세계와 자아의 통합으로서의 일원론이다. 1-2장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다루고, 3-7장은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다루는데, 3-5장은 동양의 관점에서 6-7장은 서양의 관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거대 사상이 윤곽을 더듬어보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사고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학과 역사, 철학과 종교,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거대한 사유를 준비한 책이다.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접하다보면, 우리의 다양한 생각의 근본적인 원리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었는데요. 이 근본적인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몇 않되는 책이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게 되네요. 저자가 이 책의 대상으로 선정한 사람들 중에 “세계에 대한 거대한 맥락이 궁금한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는 것 같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시나요?

 

준비운동 - 세계의 구조화와 판단중지

세계의 구조화란 세계를 추상화하여 단순하게 바라보는 과정이다. 세계의 근본 구조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자아와 세계로 나누는 것은 좀더 근원적인 구분이 될 수 있는데,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판단중지란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선입견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이든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게 마련이다. 위대한 스승들이 찾아낸 거대한 사상을 온전히 습득하기 위해서는 이런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아와 세계에 대해 위대한 스승들은 내면의 성찰을 통해 외연으로 초월해나가면서 이 두가지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일원론적 통합적 세계인 것이다. 이런 통합은 부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상식적이고 초월적인 결론으로 토론과 논쟁을 부질없이 만들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개인적인 생각

저는 개인적으로 세계관이 뚜렷한 편입니다. 약간 어울리지는 않지만, 기독교 세계관과 진보라는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관에 관련된 토론이나 논쟁에 휘말리게되면 본의 아니게 전투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판단을 심하게 하는 편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판단을 중지하고 마음을 열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일원론의 논리가 전개되면, 일종의 허무주의로 빠져들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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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7 메모리 과부하

독서노트 2021. 6. 20. 16:23 Posted by 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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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7 Memory Overload

인간이 농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진화의 덕분이 아니라, 농구를 할 수 있는 다른 인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물들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의해 다른 개체와 상호 작용을 하는 것에 반해 인간은 농구에 대한 같은 생각들을 배우게 되는데요. 이런 생각들은 순전히 상상의 소산이지만, 사람들에게 공유가 되어져 농구 경기를 할 수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국가, 교회, 상업과 관련된 생각들도 비슷한 방식입니다만 정보의 크기가 큽니다. 대규모의 사회를 이루는 개미와 벌은 대부분 정보가 유전자에 저장되어 안정적이며 믿을만합니다. 사회의 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사회의 규칙을 어길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의 사회절서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저장이 되지 않습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국은 엄청량 양의 정보를 만들어내는데, 인간의 뇌는 이들 많은 정보의 저장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일단, 그 용량의 한계가 있고, 인간이 죽게되므로 뇌에서 사라지게 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어야지만 저장이 되는데, 그 전달의 과정에서 왜곡과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뇌는 특정한 정보를 저장하고 가공하는 편향을 불러일으킵니다. 농업혁명 이후에 복잡한 사회가 시작되면서 숫자라는 새로운 종류의 정보인 숫자가 등장합니다. 인간의 뇌는 숫자를 저장하거나 가공하도록 적응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정보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고대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 에서 3000년 사이에 뇌의 외부에서도 이런 정보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뇌의 한계에서 사회 질서들이 벗어나서 발전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결과로 도시, 왕국, 제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쓰기는 수메르인들의 정보 처리 시스템인 것입니다.

 

Signed, Kushim

쓰기는 기호를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으로 수메르인들의 쓰기는 두가지 유형의 기호들을 점토판에 찍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첫번째 유형의 기호는 6진법과 10진법을 혼합한 숫자들인데, 6진법은 오늘날 24시간 이나 360도 체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머지 유형의 기호들로 주로 인간, 동물, 상품, 영토, 날짜 등을 표현하는 방법이 됩니다. 초기의 쓰기는 쓰는데 많은 시간이 소용되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필요한 기록을 저장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5000 년 전, 첫번째 의미있는 글은 "29086 단위의 보리를 37개월에 거쳐 받았음. 서명함 쿠심"이었습니다. 경제생활과 관련된 문서로 세금 채납과 부채의 증가, 그리고 소유권에 관한 기록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수메르인들의 최초 쓰기는 부분 스크립트로 수학적인 계산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를 이용해서 시 같은 것은 쓸 수 없었습니다. 안데스 스크립트는 수메르 스크립트와 매우 다른데, 몇몇 학자들은 스크립트라고 부르기 힘들다고 주장합니다. 매듭과 색상을 이용하여 기록을 하는 방식인데, 키푸라고 부릅니다. 키푸는 다량의 수학적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세금의 징수와 소유권을 기록하는데 사용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도시, 왕국, 제국에 있어서 키푸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잉카 제국은 천만에서 천이백만의 사람들을 지배하면서 발생하는 대규모의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키푸는 또한 매우 효과적이고 정확했는데요, 남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은 식민지 관리를 위해 키푸를 도입합니다. 하지만 스페인 관리들은 키푸를 사용할 줄 몰라서 키푸 전문가를 고용합니다. 이들 키푸 전문가들의 기만과 속임수가 만연해짐에 따라 결국에는 라틴 문자와 숫자로 교체되게 됩니다.

 

The Wonders of Bureaucracy

기원전 35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수메르 문자 시스템에는 다양한 기호들이 추가되면서 완전한 스크립트로 발전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에서도 완전한 스크립트가 등장하며, 중국에서는 기원전 1200년 경,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기원전 10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완전한 스크립트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들 지역에서 기원한 오나전한 스크립트들은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자를 사용하는 중요한 작업은 수학적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인 경전들은 구전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인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하여 세금의 관리나 복잡한 관료조직음 샴쌍둥이처럼 같은 시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정보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합니다. 앞서 언급한 키푸나 점토판에 저장된 정보를 검색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검색을 방법들이 필요한데, 이것은 문자의 발명보다 더 어려운 일이됩니다. 실제로 데이터를 분류하거나 검색하는데 효율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 사라진 문자들이 있습니다. 수메르, 이집트, 중국 그리고 잉카 제국의 문자들은 저장, 분류, 검색을 위한 적절한 방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서기, 사서, 회계와 같은 전문 인력을 교육하는 특별학교도 존재했었습니다. 고대 문자들은 읽기와 쓰기 뿐만 아니라 분류, 사전, 달력, 폼과 표와 같은 것들과 같이 활용범위가 넓어집니다. 뇌에서는 모든 정보들이 연관되어 보관되어 빠른 검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관료화 조직에서는 모든 정보들을 독립된 공간에 저장이 되게 되므로 일반적인 방식으로 검색이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전문화된 관료와 회계원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런 새로운 생각의 방식은 역으로 인간들의 생각과 관점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The Language of Numbers

관료조직이 발전함에 따라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법들은 자연적인 인간적인 생각과 더욱 차이가 나게 되며, 또한 중요해지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숫자라고 하는 수학적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부분적인 문자체계가 등장하게 됩니다. 0에서 9까지의 10개의 기호를 바탕으로 하는 아라비안 숫자는 실제로를 힌두 숫자라고 해야합니다. 아라비안 숫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인도에 침략한 아랍인들이 숫자의 유용성을 이해하고 도입한 이후에 널리 퍼트리는데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후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와 같은 다른 기호들이 추가되면서 현대 수학의 근간을 이룹니다. 숫자를 전세계적인 언어가 되는데, 빠른 속도와 효율성 덕분에 거의 모든 국가와 회사, 조직, 기관들이 숫자를 이용햐여 데이터를 기록하거나 관리합니다.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숫자 사용에 익숙해져야합니다. 전문가들은 풍요, 행복, 정직과 같은 개념들 역시 숫자를 이용해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특정 지식 분야는 수학적인 수식에 의해 관리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컴퓨터의 등장과 더불어 매우 혁신적인 2진법 기반의 쓰기 시스템도 등장합니다. 쓰기는 인간 의식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그 의식을 지배하기까지 이릅니다. 사피엔스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컴퓨터를 위해 오히려 사피엔스를 교육하여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숫자로 이야기하고, 느끼며, 심지어 꿈꾸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영화 매트릭스나 터미테이서에서 묘사하듯이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컴퓨터의 이진법 쓰기체계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은 통제권을 회복하려는 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

7장에서는 농업혁명, 인구증가, 국가와 제국의 등장으로 관리가 필요한 정보의 양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인간의 뇌는 그 한계에 다다라 결국에는 별도의 저장 수단인 기록 수단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 체제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학적 정보들의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숫자가 보편화된다고 합니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이 인간이 가지는 관념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면에서 언어와 밀접한 관련을 보이는 쓰기 시스템은 오히려 수학적인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왔습니다.

 

대표적인 초기 쓰기 시스템인 수메르 시스템과 안데스 시스템은 세금과 이자, 소유권과 같은 국가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관리하고 처리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초기의 쓰기 시스템외에 지금은 잊혀진 쓰기 시스템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검색이나 분류와 같이 쓰여진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뒷받침되지 않은 시스템들을은 도태되었다는 주장은 새로웠으며, 또한 상당히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기록과 활용을 위한 방법들이 제대로 갖추어진 쓰기 시스템은 결국ㅋ 국가를 관리하는 관료체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성장합니다. 이런 국가 시스템들은 오히려 인간 개개인의 삶에 역으로 영향을 많이 끼침으로 인간들의 생각하는 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특히,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등장이 인간의 말하기, 쓰기, 그리고 느낌과 생각마저도 컴퓨터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길들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전적으로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하는 일도 엄밀히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로 인간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해주는 것이니깐요. 또한, 그렇게 인간들이 컴퓨터의 소통 방식에 길들여진다는 생각을 하니, 저의 밥그릇이 없어질 것이라는 꺼리칙함과 더불어 수많은 디스토피아 영화, 소설들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썸뜩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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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6 피라미드 건설하기

독서노트 2021. 6. 18. 15:32 Posted by 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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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6 Building Pyramids

농업혁명 만큼 역사상 논란이 많은 사건은 없습니다. 번영과 진보의 길로 인류가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견해와 자연과의 공생관계를 떠나 탐욕과 단절의 방향으로 치닫는 파멸의 시작이이라는 상반되는 견해가 있습니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확실한 것은 인구의 증가로 인해 다시 농업혁명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수렵채집 시절에 비하면 아주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하게됩니다. 나무, 돌, 진흙으로 만든 구조물에 강한 애착을 부여하면서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인데요. 이 집이라는 구조물은 이웃과의 단절을 초래하면서 자기 중심적인 피조물의 정신세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주거지에 많은 노동력을 투자하여 주변의 야생과는 구분되게 만들었으며 주변에 벽을 세워 집을 보호하게 됩니다. 주거지에 지속적으로 침번하는 벌레나 곤충들을 몰아내기 위해 인간은 오늘날까지도 끝이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집이라는 주거지에 인간은 다양한 물건들을 축적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서식지에 대한 애착은 강해집니다. 서식지를 잃게 되면 그동안 축적해놓은 물건들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The Coming of the Future

농업을 하면서 농부는 수년 또는 수십년 미래로 상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수렵채집인들에게 미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맹이나 정치적 라이벌 관계와 모두 장기적인 활동의 증거들이 있어 수렵채집인들도 미래를 위한 계획을 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수렵과 채집에 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경제생활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은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이 수렵채집인들을 미래에 대한 염려에서 해방을 시켜주었습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므로 걱정을 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농업혁명으로 인해 미래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농부들은 미래를 대한 대비를 하면서 열심히 일해야만 합니다. 농업 경제는 계절에 따른 생산량의 사이클을에 기반하는데, 생산량이 극대화되는 추수 기간이 지나면 기나긴 기간동안의 재배 기간동안에는 생산량이 없습니다. 한편, 농업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불확실은 미래에 대한 염려에 이유가 됩니다. 농경에 적합한 식물과 동물의 종류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기후의 영향을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들은 생산할 수 있을때 많은 양을 생산하여 비축해두었야 생산이 부족한 시기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미래에 대한 걱정의 인간의 생각의 주된 주인공이 됩니다. 물론 걱정할 이유가 많은 것도 염려를 늘렸겠지만,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염려가 늘어나게 한 요인이 됩니다. 염려를 떨쳐내기 위해 농부는 더운 여름날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농업이 가져다주는 염려는 결국 대규모 정치와 사회 시스템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의 미래에 대한 보장은 확보되지 않고, 지배자와 엘리트 계층들은 오히려 최소의 생활이 가능한 정도만 남겨두고 농부들이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착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착취된 잉여 식량들이 정치, 전쟁, 예술 그리고 철학이 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궁전, 성, 기념비, 사원 등이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먹여 살린 소수의 엘리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소수의 업적이 역사로 남을때, 다른 다수의 사람들은 밭을 갈고 물동이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An Imagined Order

잉여 식량과 운송 수단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군집을 이루어 살고, 마을과 도시가 등장하고, 이들이 모여서 왕국과 상업망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군집사회에서는 땅과 물은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 분쟁과 대립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뭄과 전쟁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등 사회적인 약속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나 혁명이 식량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부유한 법률가들이 주동했으며, 로마는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정치적 분열을 겪습니다. 유고가 분열했을 당시에도 식량자급도는 최고의 시기였습니다. 인류는 수백만년동안 수십명으로 구성된 작은 부족 속에서 협력하도록 진화되어왔습니다. 농업혁명 이후 빠른 속도로 도시, 왕국 그리고 제국이 등장하면서 대규모 협력을 할 수 있는 본능을 진화시킬 충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물학적 본능이 없이 수렵채집 시기에도 인류는 신화를 바탕으로 수백명 규모의 낯선 이들과 협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한계도 있었습니다. 조상의 영혼이나 부족의 토템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로는 500명 가량의 사람들을 협력하게 해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수백만명의 낯선이들과 함께 협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 조국, 그리고 협동주식회사와 같은 스토리들은 수백만명의 협동이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 사회에서는 기원전 8500년 경 수백명 정도의 군집 생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기원전 221년 4천만명의 청나라의 등장과 1억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로마제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협력 시스템은 상상의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공유 미신을 바탕으로 억압과 착취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원전후 1776년의 함무라비 법전과 미국의 독립선언을 보면 이런 미신이 어떻게 제국의 지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Anu, Enli, Marduk이라는 신들이 세상의 질서를 정하고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무라비를 임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사회 계층을 지키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면 제국의 수백만명의 국민들은 조화롭게 협력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미국의 독립 선언은 보편적이고 불멸의 정의의 원칙들은 신성한 힘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인간들이 그 신성한 원칙들에 따라 행동하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미국의 독립선언은 평등을 정당화하는 딜레마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둘다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들은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객관적으로 실재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평등이라는 개념은 신화로 인간의 상상에만 존재하는데, 실제로 진정한 평등이 있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평등이란 개념은 창조라는 개념이 있어야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의 관점은 창조를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을 전제하는 진화가 있을 뿐입니다. 다르게 진화했다는 것이지요. 권리와 자유 역시 생물학적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상상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에 특정한 질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좀더 효울적인 협력과 보다 나은 사회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상되어진 질서가 악의적인 음모나 쓸모없는 신기루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수많은 인류가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True Believers

인간의 기본권리들이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듣는 것은 거북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붕괴될 위험에 처해지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볼테르는 "신이 없더라도 나의 하인들에게 이야기하지 마라, 안그러면 밤새 그들이 나를 살해할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불안은 정당해보입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는 신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붕괴되기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신화는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신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강도높은 노력으로 강제할 것입니다. 하지만, 폭력으로는 이런 신화를 지켜낼 수는 없으며, 그 신화를 맹신하는 추종자들이 필요합니다. 집단적인 폭력은 조직할 수 있는 인간의 단체 활동 중 가장 어려운 것으로 그것들을 조직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회 계층의 정점에 있는 지배자들이 사람들이 믿지 않는 상상되어진 질서가 강제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질서들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서를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들은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리스의 견유주의 학파인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방문해서 소원을 들어주겠다하자, 햇빛을 가리고있으니 잠시만 옆으로 비켜달라고 소원을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냉소주의자들이 제국을 건설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그 상상되어진 질서를 열열히 믿고 추정하는 자들의 의해 유지가되는 것입니다.

 

The Prison Walls

상상되어진 질서를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서는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절대로 인정해서는 않됩니다. 대신 그 질서들은 위대한 신이나 법률에 근거한 객관적인 실제라는 것을 주장해야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이들 질서가 상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

상상되어진 질서가 물질 세계에 내재됩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들은 둘과 같은 곳에 새겨지듯이 우리를 둘러싼 물질세계와 통합되어 존재하게 됩니다. 개인주의라는 개념의 경우 학교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의 삶에 자주 언급이 되고, 현대의 건축 구조물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현대의 집의 구조에서는 개인주의에 근거하여 그에 알맞도록 각자의 방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개념이 없었던 중세의 집에서는 개인적인 방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이 더 일반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물질 세계에 영향을 끼쳐 상상되어진 질서는 존재하게 됩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는 우리의 욕망을 제단합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당시에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상상되어진 질서가 존재합니다. 당대에 유행하는 신화들은 인간의 욕망의 형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은 역으로 이런 상상되어진 질서의 가장 중요한 방어기재가 됩니다. 낭만주의, 애국심, 자본주의, 인본주의 등은 수세기 동안 존재하던 질서입니다. 가령 "마음이 이끄는대로 행동해라"라고 우리가 흔히 듣는 상황을 예로 들어봅시다. 마음은 이중적인 요인 당시에 유행하는 신화에 영향을 많습니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와 20세기에는 소비주의 신화에 영향력이 컸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행산업은 이 둘을 적절하게 잘 조화를 시켰습니다. 낭만주의를 통해 사람들은 낯선 곳에 여행을 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소비주의를 통해 여행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부터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학이 되면 여러 수고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지요. 고대 이집트 왕이 휴가라고 옆의 바빌론 제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나요?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인의 엘리트들과 마찬가지로 피라미드를 짓는데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사용합니다. 단지 이들 피라미들은 다른 이름, 크기, 모양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로 하여금 고되게 피라미드를 짓게 하는 욕망을 제단하는 신화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경우는 정작 드뭅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는 상호-주관적입니다.

상상되어진 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수백만명을 확신시켜야 합니다. 이들 질서는 상호-주관적으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의 상상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이해를 위해 먼저 객관적, 주관적, 상호-주관적이란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해봅니다. 객관적인 것은 인간의 의식이나 믿음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한 예가 되겠습니다. 주관적인 것은 개인의 의식이나 믿음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 개인이 믿음을 바꾸게 되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상호-주관적인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의식들을 연결한 커뮤니케이션 망에서 존재합니다. 만약 해당 커뮤니케이션 망에 속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거나 믿음을 변경하면, 상호-주관적인 현상들도 변하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예로는 역사의 강력한 원동력이었던 법률, 돈, 신, 국가들이 있습니다. 푸조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푸조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는데, 푸조의 사장이 푸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에 병원에 갇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장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달러, 인권, 미국 등도 공유 상상 속에 존재합니다. 한두명이 믿음을 잃게 되더라도 별 의미는 없습니다.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정치 정당, 이데올로기 운동 또는 종교 활동과 같은 복잡한 조직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푸조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법률을 통해 푸조의 해산을 선언해야만 하듯이 말입니다.

이런 상상되어진 질서라는 감옥의 벽을 부수어야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데요. 그 벽을 부수고 나면 나타나는 것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이라는 사실에 부닺히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견해

6장은 여러 사람들의 의식에 존재하는 관념들이 어떻게 인류 사회에 실질적, 아니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조정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농업은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게 만들고, 이런 걱정으로 인간들은 미래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이런 잉여 식량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보장을 위한 지배체계는 오히려 인간들을 착취와 억압의 굴레로 몰아넣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는 말이 있는데, 미래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현재의 우리를 비참한 상태로 묶어놓게 되는 것일까요?

 

잉여 식량은 집단 생활을 가속화시켜, 인구증가가 지속되면서 촌락, 도시, 왕국을 거쳐 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화롭게 협동하기 위해서 역시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데, 신화도 조상신이나 부족의 토템에서부터 전지전능한 신이나 법률과 같은 것들에 대한 스토리로 발전합니다. 이런 신화는 객관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실제하지 않는 것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가집니다. 실제하지 않는 것이 지배를 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강력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처럼 다가옵니다.

 

이런 신화를 통해 조직된 질서에 의해 이익을 보는 지배층들은 신화의 열열한 추종자가 됩니다. 추종자들이 있어야 신화는 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신화들은 수많은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게 됩니다. 이런 신화들은 물질세계에 대한 영향력과 인간의 욕망을 제단하여 그 자신의 영속성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언어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여러 인간들의 의식에 퍼져버린 신화는 한 두 개체의 노력으로 변화가 되지 않고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단 국가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독재국가의 사상적으로 경도된 집단주의 시스템에서 지내온 나와 나와 같은 시대를 지내온 한국인이라는 사피엔스들을 지배하는 신화에 대한 거북함과 일종의 두려움이 들게 되었습니다. 감옥을 벗어나도 또 다른 커다란 감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일종의 저주처럼 들리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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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독서노트 2021. 6. 16. 23:21 Posted by 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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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5 History's Biggest Fraud

2백 5십만년 동안 인류는 식물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사냥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약 만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을 이루어냅니다. 농업의 시작은 기원전 9500년전부터 기원전 8500년 사이에 터키 남동부, 이란 서부, Levant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한적인 지역에서 서서히 여러단계를 거쳐 농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업이 중동지역에서 시작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었지만, 여러 곳에서 독립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고 여겨집니다. 중동과, 중국, 그리고 중앙 아메리카이 농업의 기원지라고 여겨집니다. 이들 지역 외의 지역에서 농경이 시작되지 않은 이유는 농작물화와 가축화될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이 한정적이고 특정 지역에서만 서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물과 동물이 있는 곳에서 농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농경이 시작된 근원이 진화에 따라 발전한 지능이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로 인간의 지능이 발전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농업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증가시켜주었지만, 불균형적인 영양과 더 적은 여가 시간을 남겨주어 인간의 삶의 질은 더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할 만합니다. 농업혁명을 밀의 관점에서 본다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여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밀을 재배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사피엔스의 몸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서, 여러가지 질환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보면 밀이 사피엔스를 길들였다는 것이 더 타당해보입니다. 과연 사피엔스는 좋은 삶을 포기하고 절망적인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농업이 가져다준 장점 중에 하나는 같은 크기의 땅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피엔스는 그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게 됩니다. 객체의 삶의 질과는 상관없이 복제된 DNA의 숫자로 진화적인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써 농업혁명은 각각의 개체들의 삶의 질은 떨어뜨리는 덫이 되었습니다.

 

The Luxury Trap

수백년 내치 수천년의 시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농경이 시작되었으로 보입니다. 사피엔스는 농업 없이도 오만년 동안 번성했었습니다. 호르몬이나 유전적인 요인으로 번식을 조절하여 자연적인 개체수 조절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자연적인 개체수 조절은 문화적인 메커니즘으로 흡수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약 만팔천년전 전에 전지구적으로 날씨가 따뜻해지고 강수량이 많아지면서 밀과 기타 다른 작물들에 적합한 기후가 되어 자연적으로 밀이 많아지게 되었고, 밀을 채집해서 옮기는 과정에 땅에 떨어진 밀로 인해 밀은 더욱 더 번성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밀이 풍부한 곳에는 사냥감과 다른 식물들도 풍부해서 인간들은 유랑 생활을 접고 계절별로 정착생할을 하다가 종국에는 완전한 정착생활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정착생활과 아이들의 빠른 이유로 인해 여성들은 자주 임신이 가능해져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증가하는 인구는 높은 생산량의 농업이 가져다는 잉여 식량을 빠르게 소비합니다. 질병에 취약한 정착생활과 모유를 적게 먹게 되므로 낮아진 면역력, 식량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아동 사망율은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출생률이 사망률을 압도하면서 인구는 증가하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삶을 편하게 하려는 일련의 향상은 인간에게 오히려 굴레를 씌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의 궁극에는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 알지 못하고, 단지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단편적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변화들이 여러세대를 거치면서 사회를 변화시켜갔기 때문에 기존에 다른 방식의 삶을 경험한 사람이 없게 됩니다. 결국 인구의 증로 인간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고 일종의 덫에 갖히게 됩니다. 보다 편안한 삶에 대한 추구는 결국 더욱 힘든 삶이 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것도 한번 익숙해지면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이렇듯이 한번 정착해서 곡물을 경작해보게 되면 농업은 불가피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인구는 수렵채집을 하는 부족들을 몰아내게 됩니다.

 

Divine Intervention

인간들은 항상 편안한 삶을 추구하려고만 하지는 않고, 자아실현을 위해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현대 역사에서는 이데올로기나 문화와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야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된 증거가 없는 고대의 역사의 경우에는 유물론적인 해석이 더 많습니다. Gobekli Tepe에는 9,500년 전 수렵채집 사회에서 만들어진 무게 7톤의 높이 16 피트에 달하는 기념비와 같은 기둥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수렵채집 사회의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인상적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정도 규모의 구조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수의 부족의 수천명의 사람들이 상당 기간의 시간 동안 협동해서 일을 해야합니다. 어느정도 발전한 종교나 이데올로기 뒷받침해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Gobekli Tepe에서 20 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물화된 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해야하는 하는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많은 양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전환했다는 해석을 해보면, 일반적으로 마을이 만들어지고 번성한 다음에 그 중간에 사원이 생긴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사원이 먼저 생기고 마을이 그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Victims of the Revolution

동물의 가축화해가는 과정의 첫번째는 장기적으로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 번식이 가능한 암컷과 젊은 개체들을 보호하는 선택적인 사냥의 단계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포식자로부터 적극적으로 지키기 위해 통제와 보호가 용이한 좁은 공간에 모아두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보호와 통제하기 힘든 사납거나, 마르거나, 궁금증이 많은 개체들은 먼저 도축이 되면서 여러세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필요에 맞는 온순사고, 살이 많고, 궁금증이 적은 개체들만 남게 됩니다. 또다른 해석은 동물들을 잡아서 어느정도 기른 다음에 도축을 하는 과정에서 기르기 쉬운 순종적이고 매력적인 개체들만 남겨두면 오랜 기간이 지나면서 순종적인 양들이 가축화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작물의 재배가 우선이고 동물을 키우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을 활용하는 주로하는 새로운 유목사회도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축화된 동물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그 개체수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게 됩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는 DNA의 숫자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는 농업 혁명은 닭이나 소, 돼지 양들에게 훌륭한 혜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의 관점에서는 진화적으로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개체의 관점에서는 이들은 가장 불행한 생물체가 됩니다. 닭과 소들은 생후 단 몇주 혹은 몇달만 지나면 도축이 됩니다. 달걀을 낳는 암탉이나 우유를 생산하는 암소, 물건을 옮기는 동물들은 좀더 많은 기간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개체 역시 자신들의 희망에 반하는 비참한 삶을 그 댓가로 치뤄야 합니다. 동물들 역시 새끼를 가져야만 우유가 생산되는데, 생산된 우유가 새끼의 차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갓 태어난 새끼를 도축하는 것입니다. 우유의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어미는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새끼를 어미 옆에 두기는 하되 우유를 너무 많이 섭취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어미와 새끼의 저항이 심해서 위험할 수도 있는데, 간혹 죽은 새끼를 박제하여 어미 곁에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새끼의 입주변에 가시 고리를 부착하여 어미로 하여금 수유를 꺼리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모두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양모를 얻기 위한 양이나, 애완용 개와 고양이, 전투용/경주용 말들은 제법 안락한 조건의 삶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해당 동물 개체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아마 농업혁명은 이런 가축화된 동물들 개체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재난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진화적인 성공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 종의 숫적인 증가는 엄청난 고통을 겪는 개별적인 개체에게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화적인 성공과 개별 개체의 고통의 괴리는 농업혁명이 가져다 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개인적인 견해

4장에서는 인류 혁신의 중요한 계기인 농업혁명에 대해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하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합니다. 농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가 이루어지면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가 발생합니다. 인구의 증가는 복제된 DNA의 숫자가 증가되므로 종의 관점에서 볼 때, 진화에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는 인간을 힘든 농사일에 더욱 종속하게 만들어 개개인의 삶은 수렵채집 시절보다 더 비참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개개인의 삶이 비참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영양적인 불균형, 질병에 취약해짐, 더 고되진 노동의 강도, 여가 시간의 감소 등등이 제시됩니다. 이 부분들은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렵채집 생활의 문제점은 환경의 영향을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아, 겨울철이나 기후 이상이 오게 되면 생존이 어려워지는 취약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상대적으로 농업은 향상된 생산력으로 잉여 식량을 저장하여 어려운 환경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어 상대적으로 수렵채집보다 비교우의에 있었을 것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진화적으로 유리한 것이 개체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진화를 거듭하면서 개체의 삶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유전자의 관점과 생존기계인 개체의 관점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야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개미와 꿀벌 사회의 경우 유전자 유사성의 특이성을 바탕으로 일개미와 일벌들은 독립적인 삶보다는 사회를 위해 절대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분명 독특한 사회구조를 통해 유전자가 잘 보존되도록 진화적으로는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평생 번식도 못해보고 노동에 시달리고, 집단이 위험해주면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목숨을 내어주는 개체들의 관점에서는 과연 긍정적인 진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발하라리는 농업혁명과 함께 비참해진 것인 인간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 가축화된 동물들의 비참함에 비하면 인간의 비참함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대부분 가축들은 인위적으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육되고 도축되면서 개체의 비참함은 말할 나위없이 비참해졌습니다. 역시 DNA의 양적인 증가라는 측면에서는 진화적으로는 성공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진화에 개체들은 희생이 되어진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인간과 가축의 개체들은 성공적인(?) 진화의 희생양인 된 것일까요?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으로 인해 인간은 어느정도 유전자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주장을 하는데요. 사피엔스를 읽어보니 그 유전자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주장에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유전자와 가축들의 유전자는 인간개체와 가축개체들이 비참한 일생을 바탕으로 진화적 안정상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개체들은 유전자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몇가지 고민이 되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육식에 반해 채식은 윤리도덕적으로 타당한가? 종의 개량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교배를 통한 개량에 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한 개량은 어떻게 윤리도덕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는가? Beyond Meat과 같은 ESG 기업들의 대체육은 윤리도덕적 논쟁에서 자유로운가?

 

일반적으로 식물이나 신경조직이나 의식이 없는 동물들의 경우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을 취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아마, 먹이사슬이라는 생존을 지배하는 자연법칙과 윤리도덕률 안에서 고뇌하기 시작한 사피엔스가 고안해낸 법칙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특정한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가 그렇지 아니한가에 대한 판단의 문제를 제외하면, 이 법칙은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환경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최근 비욘드미트(Beyond Meat)와 같은 대체육이 각광을 받는 이유의 큰 부분이 육식에 대한 윤리도덕적 고뇌에서 비롯되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세포배양으로 일종의 고기를 재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화학적인 방법에 따라 고기를 합성하는 방법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대체 수단이 동물 개체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면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모든 부분에서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이 타당하는 관점에서의 비판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의 개량의 경우에는 종교적인 신념과 결부해서 원래 신이 디자인 세상이 완벽하기 때문에 그 어떤 종류의 비자연적인 개량은 종교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한편, 유전자를 기반으로한 종의 변화의 원리 역시 신이 인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도구라는 관점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한 개량 역시 종교윤리적 정당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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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4 대홍수

독서노트 2021. 6. 14. 10:05 Posted by 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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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4 The Flood

인지혁명이 일어나가 전에는 Sapiens는 대부분 아프리카-아시아 대륙에 거주했습니다. 대륙간 이동을 한 다른 동물들도 없어 각각의 대륙들은 각자의 고유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4만 5천년 전이 되어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사피엔스가 넘어가게 됩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지만, 120 마일 정도되는 물을 건너야했으므로 보트와 항해술이 발전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유력합니다. 이는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가 아폴로 II 호의 달탐사에 비견할만한 업적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올라가게 되어 지구의 역사상 유래 없이 무시무시한 종이 됩니다. 그 전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했던 사피엔스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적응하지 않고, 그 생태계를 확 변화시켜버럽니다. 23개 종의 덩치큰 동물들과 함께 수많은 종의 작은 생물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생태계의 먹이 사슬은 완전히 붕괴되어 다시 정리됩니다. 호모 사피엔스 때문이었을까요?

 

Guilty as Charged

이런 생태계의 급작스러운 변화의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는데요. 4만 5천년 전에는 별다른 커다란 기후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구의 기후는 항상 변화해왔었고, 약 10만년 주기로 빙하기가 오면서 추워졌다가 더워지기를 반복했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는 7만년 전에서 시작해서 만오천년 전에 끝납니다. 그 중에서 몹시 추웠던 시기는 7만년 전과 2만년 전입니다. 그런데 왜 4만 5천년 전에 95%에 달하는 동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라지게 된걸까요? 분명 환경적인 영향이기는 한데, 공교롭게도 사피엔스가 오스틀레일리아 대륙에 정착한 시점과 겹칩니다. 또한 기후 변화가 이유였다면 해양 생물들도 비슷한 규모로 사라졌어야 하는데, 해양 생물들은 멀쩡했습니다. 아마도 사피엔스들의 개입으로 지상 생물들에게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피엔스 원인설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이런 대멸종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뉴질랜드는 800년 전에 마오리 족이 나타나면서 대부분의 생물들이 멸종합니다. 매머드는 만년 전 쯤 사피엔스가 서식지로 이동하면서 멸종을 합니다. 북극해의 Wrangle 섬에 서식하던 매머드들은 4천년 전에 멸종하는데, 이 역시 사피엔스가 Wrangle 섬에 등장하는 시점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보면 사피엔서는 생태학적인 연쇄 살인자입니다.

 

인간이 생태학적인 재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몇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커다란 동물들은 번식을 느리게 하기 때문에 사냥을 쉽게 당하면서 개체수가 줄어 멸종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덩치큰 동물들은 인간의 사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을 피하는데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커다란 동물드은 적응할 시간 없이 속수무책으로 사냥을 당해 멸종당했을 것입니다. 다른 이론은 화전 농경이 원인으로 사피엔스들이 농경을 위해 놓은 불로 인해 생태환경이 완벽하게 변화했다는 주장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유칼리투스 나무는 불에 특히 강한데, 이 유칼리투스 나무만 번성하게 되어 유칼리투스 나무잎을 주식으로 하는 코알라만 삶아남고 나머지 동물들은 멸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기후 변화와 사냥 그리고 화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이론입니다. 기후의 변화로 생태계가 취약하게 되었고, 인간의 등장으로 생태계는 복구할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한자기 확실한 것은 사피엔스가 이동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유대류 사자나 디프로토돈, 거대 캥거루와 같이 멸종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The End of Sloth

아메리카 대륙 생태걔의 재앙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만 6천년 전에 사피엔스는 해수면이 낮아져 생긴 시베리아와 알라스카의 육상로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갑니다. 이를 건너기 위해서는 극심한 추위에 적응을 해야하는데, 사피엔스는 아주 독자적인 해결 방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눈신과 보온에 효율적인 옷을 만들어서 입은 것이지요. 또한, 사냥기술도 발전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피엔스는 북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혹은 인구수 증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또한, 동물성 지방이 풍부해 좋은 식량이 되는 순록이나 매머드를 사냥하기 위해 이동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Sunjir 유적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이들은 가까스로 생존을 한 것이 아니라 매우 번성했습니다. 결국 만 4천년 전에는 시베리아를 거쳐 알라스카로 이동합니다.

 

알라스카에 이동을 막 했을 때는 빙하가 가로막혀 사피엔스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만 2천년 전 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빙하가 녹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을 합니다. 천년 혹은 이천년 만에 사피엔스는 아메리카 대륙 거의 모든 곳을 점령합니다. 유전자의 변이 없이도 완벽하게 다른 환경에 적응해낸 것이지요. 사람이 지나간 곳에는 긴 희생의 행렬이 뒤따랐습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ㅇ에는 없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는데, 사피엔스가 도달한지 2천년 만에 대부분의 종들이 멸종을 합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47종의 대형 포유류중 34개의 종이 멸종을 했으며, 남아메리카에서는 60종 중, 50종이나 멸종을 하게 됩나다. 적은 동물은 수천 종이 멸종하게 됩니다. 고생물학자나 동물고고학자들은 멸종한 낙타의 배설물과 화석을 연구하여 기원전 만 이천년전과 구천년 사이에 낙타가 멸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캐러비언 섬인 쿠바와 Hispaniola에서는 기원전 5천년까지 낙타의 배설물이 발견이 됩니다. 기원전 5천년에는 인간이 캐러비안 바다를 건너 이 두 섬에 정착한 시기입니다. 배설물들은 스스로 달려서 섬으로 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생태계 파괴의 범인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기후의 변화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Noah's Ark

사피엔스의 첫번째 식민지화는 생태계에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인지혁명이 시작할 무렵 200개의 대형 지상 포유류가 있었지만, 농업혁명이 시작될 무렵에는 100여 종만 남게 됩니다. 사피엔스가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형 포유류를 멸종시킨 것이지요. 농업혁명 이후에는 같은 과정이 반복이 됩니다. 인간이 없는 시기에는 대형 동물들의 수와 종류가 풍부했다가 인간이 나타나면서 대형 동물과 소형 동물들이 대규모 멸종에 이르게 됩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좋은 예가 됩니다. 수백만년 동안 고립되어있어 매우 독특한 동물들이 진화했었지만, 천 오백년 쯤 갑작스럽게 동물들이 사라집니다. 바로 인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태평양의 섬들도 인간의 등장과 함께 생태계의 커더란 변화를 맞습니다. 대서양과 인도양, 북극해, 지중해의 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파고스도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19세기까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었는데,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인간을 보고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수렵채집인들이 등장하면서 첫번째 대멸종이 일어났고 농경인이 등장하면서 두번째 대멸종이 일어났습니다. 세번째 대멸종은 산엽화의 영향으로 현재 진행형입니다. 대부분의 식물과 동물들은 멸종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는 사피엔스가 생물학 역사상 유래가 없이 무시무시한 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형 바다 생물들은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에 의한 해양 오염과 인간에 의한 해양자원의 남용으로 말미암아 멸종의 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인간의 홍수에 살아남는 것들은 인간 자신들과 노아의 방주에 노예로 탑승한 가축들 뿐일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

사피엔스의 한개체로 읽는 4장은 거북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오래 기간 격리되어있던 생태계의 많은 동물들이 도구와 복잡한 사냥 기술을 터득한 인간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멸종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제러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피엔스에 나오는 내용도 총균쇠의 내용과 거의 유사해서 별다른 고민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사회적인 이슈까지 되었던 황소 개구리 역시 생소한 황소 개구리에 적응을 못한 생태계의 생물들이 심각한 교란을 당해 뱀마저도 개구리에게 잡혀먹히는 당황스런 사태까지 생기게 되었는데요. 그래도 최근에는 너구리나 삵의 등장으로 어느정도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유발하라리가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인간과 가축만 남는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고, 그 사이에서도 적응하여 살아남는 동물들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총균쇠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생태계의 교란은 결국 인간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라시아의 경우에는 멸종을 피한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가 진행되어 농업 생산력의 증대, 가축들의 군사무기화, 초기 산업화의 기여 등을 통해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나 아메리카 대륙은 가축화한 대형 동물의 부족으로 산업화의 속도가 늦어지게 되었고요. 이들 가축들은 "균"이라는 총과 쇠를 능가하는 가공할 무기가 되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멸종에 가까운 붕괴에 커더란 원인되었다고 합니다. 강력한 사냥기술로 아메리카 대륙을 완전히 제압했던 사피엔스는 아이러니 하게도 후손 사피엔스가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하는데 원인을 제공한 것 같네요.

 

1, 2차 대멸종을 거쳐 3차 대멸종의 시기를 걸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회용 제품의 증가, 코로락스와 손세정제의 영향은 어떻게 될까요? 마스크 쓰레기가 엄청나게 배출되고 있다는데요. 코로나보다 강력한 전염병이 나와 사피엔스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4장을 마무리하며 1부 인지혁명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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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3 A Day in the Life of Adam and Eve

수렵채집 시대의 생활양식들은 여전히 우리의 두뇌와 의식에 살아있어 오늘날의 사회적 심리적 특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게걸스러운 유전자 이론"이 대표적인 예로 수렵채집, 시절에 높은 칼로리의 단맛이 강한 과일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려야만 하던 습성이 그대로 유전자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높은 칼로리의 단 음식의 과도한 섭취가 건강에 해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별다른 이견이 없는 이론과 달리 수렵채집 시대의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두개의 상반된 이견들이 존재합니다. 사유재산과 일부일처제가 아닌 공동체 사회이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일부일처제와 핵가족 중심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서로 대립합니다. 하지만 수렵채집 시대에 대한 해석에는 문자 기록이 없이, 고고학적인 편향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편향된 시각으로 수렵채집 시대를 획일적으로 제단하는 우려는 피해야합니다. 소위 추론을 할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기준도 사실 우리들의 삶에 제한되므로 수렵채집 사회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놓치게할 수 있습니다. 인지혁명과 허구의 등장으로 수렵채집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다양했을 것입니다.

 

The Original Affluent Society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사회 이전의 사회를 일반화시켜보자면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대부분 인간들로 구성된 부족 사회였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개 외에는 가축화한 동물이 없었을 것입니다.

 

부족 내 구성원들은 서로 친밀하여 외로움이나 프라이버스 같은 것들은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부족들 간에도 상호 협력을 하다가 부족들 간의 연합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부족들은 고립되어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영구적인 정치체계, 도시, 국가를 탄생시키지 못하고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입니다. 이들 부족들은 계절의 변화, 동물들의 이동이나 식물들의 성장 주기에 따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동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동아프리카에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쳐나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정착생활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4만 5천년 전 최초로, 인도네시아 해안에는 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정착촌이 등장합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수렵보다는 좀더 유연하고 기회적인 채집이 식량을 구하는 중심 수단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식량 뿐만 아니라 지식의 습득도 매우 중요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주변의 지형들을 머리 속에 기억해야하고, 동물이나 식물들의 습성에 대해서도 알아야했을 것입니다. 이런 기술들은 배우고 연습하여 숙달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현대인과 비교하면 수립채집인들은 주변환경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수렵시대를 기점으로 인간의 두뇌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또한, 수렵채집인들은 현대인들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났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렵채집 사회는 좀더 편안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수렵채집인들은 보통 주당 35 ~ 45 시간 정도 일을 합니다. 오늘날 개발 도상국 노동자들의 60 ~ 80 시간, 선진국 노동자들의 40 ~ 45 시간 주당 노동시간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은 오늘날 칼라하리 사막보다 더 비옥한 지역에서 살았다고 보면 효율성이 더 높았을 것입니다. 이로인해 더 많은 여가 시간을 누렸을 것으로 보입니니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이상적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현재보다 더 크고 건강했을 것입니다. 채집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식량원으로 말미암아 영양학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특정 식량 자원이 사라지더라도 다른 식량으로 대체하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축화된 동물이 없고, 낮은 인구밀도로 전염성 질환의 발생도 상대적으로 낮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렵채집인들의 삶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어려움과 잔인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 존재했던 파라과이의 Ache 부족은 부양할 수 없는 구성원들을 버리기나 죽이기도 하는 잔인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어른들간의 특별한 충돌이 없고, 적은 소유에도 관대한 모습을 보이며, 성공이나 부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이나 높은 수준의 친교를 중요시하는 긍정적인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잔인함이 부족인들을 사냥하여 죽이던 파라과이 농부들과의 전쟁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로 수렵채집인들의 생활 방식을 폄훼하거나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Talking Ghosts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종교는 애니미즘이었을 것으로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애니미즘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심지어 자연현상까지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가 직접 교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질적인 사물과 살아있는 생물 외에 형이상학적인 객체도 애니미즘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고, 특정한 존재들이 계층 없이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애니미즘은 특정한 종교라기 보다는 당시 성행하던 종교, 문화, 믿음을 통칭하는 좀더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인정하고, 성급한 일반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한편 종교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회정치 구조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제한적입니다. 아마 각 부족마다 고유의 구조를 가졌을 것으로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러시아의 Sungir 지역의 3만년 전 부족의 무덤에서는 메머드 상아로 장식된 중년 남자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해당 부족이 계급사회 구조를 가졌을 것을 판단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아로 장식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함깨 묻혀있는 무덤에 대한 해석입니다. 부족장의 자식이거나, 제사의 제물이었을 수 도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계시로 인해 특별히 구분된 아이들일 수 있다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DNA가 지정해준 방식이나 다른 동물들의 행동 방식을 벗어나는 고유의 사회정치적인 코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Peace or War?

고고학적인 증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고대 수렵채집 사회가 호전적이었는지, 아니면 평화적이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까지 남아있던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를 통해 판단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현대의 수렵채집 사회는 주로 고립되어있는 살기 어려운 지역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밀도도 낮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근처에 잘 조직화된 국가가 존재하여 상대적으로 전쟁을 삼가하는 경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이나 호주의 원주민들은 이와 반대로 잦은 무력 충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역시 유럽의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호전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들에 대한 해석도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한편, 포르투갈, 이스라엘 그리고 댜뉴브 계곡에 있는 400 여개의 뼈 샘플에 대한 연구는 포르투갈과 이스라엘의 경우 한두개의 뼈 샘플에만 골절이과 같이 폭력적인 외력에 의한 상처가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고, 다뉴브 계곡에서는 무려 18개의 샘플에서 폭력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4.5%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쟁과 학살이 만연하다는 현대의 1.5%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단의 Jabl Sahaba에서는 무려 40%에 달하는 뼈 샘플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했고, 바바리아의 Ofnet 동굴의 두군데 매장지에서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로 구성된 38구의 시체들이 발견되어 대량 학살도 당시에 있었음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고대 수렵채집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부족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 중에는 호전적인 부족들도, 평화적인 부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The Curtain of Silence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보편적인 삶을 추론해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맞닥드리게 된 흥미로운 사건에 대한 정보를 거의 알 수 없습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있겠지만, 정치적, 정신적인 활동에 대한 정보들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수만년의 역사는 침묵의 커튼에 쌓여져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들에 대한 답을 우리는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답이 없는 사실들에 대한 질문들을 하는 것은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 수렵채집을 했던 인간들이 세상을 엄청나게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의 생태계에 엄청난 파멸적인영향을 끼쳐 지구의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

3장에서는 몇가지 단편적인 증거나 현재의 삶의 방식으로 고대 수렵채집 시대의 생활 양식을 쉽게 판단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학자가 가져야하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삶은 더 많은 여가시간을 누리고, 건강했으며, 질병에도 덜 시달리는 등 현대인들의 삶보다 나은 면도 부각시키고, 사회에 도태된 개체에 대해서는 잔인한 면도 보여주면서, 지나치게 그들의 삶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이상화하거나 폄훼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합니다. 저자의 성급한 판단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는 100% 동의를 하지만, 수렵채집 사회가 농경 사회로 이행하게 된 추론을 통해 수렵 채집 사회의 한계를 설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기후가 좋은 해에는 수렵채집의 성과가 좋았겠지만,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해 성과가 좋은 않은 경우에는 굶주림과 심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삶이 반복되는 가운데, 인간들은 삶의 불안함을 느꼈을 것 같고요. 종교 의식과 같은 형태로 그 불안함을 극복해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농업이 그나마 개인의 노력으로 불안함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받아들여져 농경 사회로 이행하게 되었을텐데요.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뒤에 가면 나오게 될까요?

 

물질적인 사물, 살아있는 생물, 심지어 형이상학적인 객체도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애니미즘에 대한 설명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성행하던 특정한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여러 종교, 문화, 믿음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개념이라는 부분도 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장에서는 유발하라리가 기존의 선사시대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들에 대한 비판이 마음에 많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가령 지질학적인 사건이나 고고학적인 사건들에 대한 주장들을 들여다보면, 열린 관점에서 새로운 관찰이나 증거들을 바탕으로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들이 수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3장을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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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2 지식의 나무

독서노트 2021. 6. 9. 06:06 Posted by 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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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 The Tree of Knowledge

약 15만년 전부터 7만년 전까지 사피엔스는 다른 인간 종에 비해 특별히 뛰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약 7만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지금의 우리와 같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다른 인간 종과는 확연학 차이가 나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인지혁명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우연한 유전적 돌연 변이로 발생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이런 인지혁명의 중요한 결과중 하나가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유연한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언어 발전의 원인에 대한 이론으로는 사회 구성원에 대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뒷담화 이론"과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는 "강변사자 이론"이 있다고 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 특별한 언어는 전설, 신화, 신, 종교와 같이 실제로 보이지 않는 "허구"에 대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이로 인해 집단적인 생각의 공유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집단적인 생각의 공유는 낯선 개체와도 유연한 방식으로 협력이 가능해져서 많은 수의 객체들의 협업이 가능해져 결국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The Legend of Peugeot

침팬지와 같은 동물도 사회를 구성하지만, 객체 간의 유대관계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체 사회 구성원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원시 사피엔스 사회도 이런 동물 사회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인지혁명으로 인해 사피엔스 부족들은 뒷담화로 인해 수적으로 더 커지게 됩니다. 허구의 등장은 공통적인 미신을 믿는 낯선 개체와의 협력을 가능하게 해서 대규모의 협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현대 인간사회의 제도들이나 기관들에 대한 기반은 원시인들이 귀신을 믿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가령, 유명 자동차 제조회사인 푸조는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법적으로만 존재하는 "법적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푸조의 직원들은 이 법적 허구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을하여 훌륭한 자동차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푸조의 경우, 프랑스의 법에 기반한 그 설립의 절차들은 하나의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기 시작하면서 대규모의 협동이 가능해지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상상의 현실이 됩니다. 이 상상의 현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게 됩니다. 이론 인해 인지혁명으로 인해 현실을 상상의 현실과 실제적인 현실로 구분하는 이원론이 등장하게 되고, 상상의 현실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게 되면서 심지어는 실제적인 현실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Bypassing the Genome

일반적인 사회적인 동물들은 사회적 행동에 변화가 타나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변화가 수반되어야합니다. 예를 들면, 침팬지의 경우 유전자의 변화가 없이는 알파 숫컷 중심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민주주의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원시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의 경우에는 유전자의 변이를 통해 도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근 2백만년 동안 호모 에렉투스의 도구는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의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사피엔스의 경우에는 인지혁명 덕분에 유전자의 변화 없이도 급격한 사회적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수많은 개체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상상의 현실의 이야기들을 변경하는 것 만으로 수많은 개체들의 행동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빠른 사회적인 행동의 변화가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고대 유적지에 나타나는 대규모 사냥의 증거들은 상상적인 현실이 얼마나 많은 사피엔스들을 신뢰 관계로 묶어 대규모 협동을 할 수 있는가를 엿보게 해줍니다. 500의 사피엔스가 협동해서 50의 네안데르탈인들과 맞선다면 결과는 뻔할 것입니다. 설령, 첫번째 전투에서 패배했다라고 하더라도 사피엔스는 빠르고 새로운 전략을 개발해서 결국에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What happed in the Cognitive Revolution?

주변 환경에 대한 더욱 많은 정보를 얻게 되어 보다 복잡한 계획이 수립되고 그에 따른 행동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사피엔스 사회 내부의 관계에 대한 더욱 많은 정보들은 150여 개체들로 구성된 유대성이 높은 큰 규모의 사회가 가능하게 해줍니다. 허구에 관련된 정보들은 대규모의 낯선 개체들간의 협력이 가능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행동에 대한 빠른 혁신이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History and Biology

상상의 현실이 다양해지면서 사회적 행동의 패턴들도 다양해지고, 이런 다양한 패턴들의 집합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릅니다. 이런 문화의 변화와 발전을 역사라고 부르게 되고요. 인지 혁명으로 인해 문화의 발전은 생물학적인 발전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물론, 감정능력과 인지능력은 기본적으로 DNA에 정해진다는 기본적인 생물학적인 법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른 사회적인 동물과 비교하여 사피엔스는 개체나 작은 군집의 단위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단의 개체수가 150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사피엔스 사회는 다른 동물들의 사회와 차이를 나타나게 되고, 개체의 수가 1000이나 2000을 넘어가게 되면서 그 차이는 놀라울만큼 현격하게 됩니다. 사피엔스 사회에서는 질서정연하게 패턴화된 사회적인 행동이나 제도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미신적인 유대가 수많은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약 3만년 동안 생리학적으로 도구를 만드는 능력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규모의 낯선 개체와의 협력의 능력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사피엔스 사회는 도구의 발전을 압도하는 향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약을 하지만, 생물학은 사피엔스의 행동과 능력에 대한 기본적인 인자들을 설정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허구를 바탕으로 인간들은 복잡한 행동 패턴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사피엔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역사적인 진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의견

2 장은 사피엔스가 유전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빠른 사회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인지 혁명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복잡한 생각을 표현하게 해주는 유연한 언어일텐데요. 이런 언어의 등장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설을 설명을 해주는데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은 부족해보입니다. 물론, 유발하라리도 "그냥 우연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한 생각을 발전시켜보다 보면 좋은 리서치 거리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 생물학적 진화에 거친 사피엔스들은 성공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다른 사피엔스 부족들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사냥의 조건이 변화되는 등, 삶의 양상들이 변화했을 것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좀 더 발전된 의사소통을 하던 사피엔스들은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환경이 조성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네안데르탈인이나 에렉투스들도 그 과정에 다른 사피엔스들과 함께 도태될 수도 있겠지요. 결국 언어를 잘 사용하는 사피엔스만 남았다고 봐도 되는거죠. 앞서 개인적이라고 말씀드렸듯이 순전히 상상의 산물입니다. 아무런 문헌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야기한 "밈"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해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물들의 행동에는 유전자를 통해 유전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유전자를 통해 유전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령, 어려서부터 야생의 부모와 떨어져 인간에게 길러진 객체는 야생으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그 예일 수 있습니다. 출생 후의 학습도 개체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요. 어쨌든 "밈"이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이를 뇌세포라고 해보겠습니다. 객체의 행동 정보를 물려주기 위해 유전자를 주로 이용하다가 뇌세포를 더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사피엔스들이 경쟁에 우의를 점하면서 유전자에 의존하던 사피엔스들은 도태되고, 뇌세포를 더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사피엔스들이 더 많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유발하라리가 "우연적"이라고 궁색하게 넘어간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푸조의 예는 어떤 면에서 조금 지루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쉽게 설명하려고 비유를 들은 것은 좋았지만, 차칫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비약이 끼여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고도의 협력이 인간의 고유의 그리고 강력한 특징임에는 자명한 사실인 것 같고요. 이에 대한 설명으로 생물학적인 범주를 벗어나서 설명한 부분은 도킨스의 "밈"만큼 신선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물론, 설명의 깊이나 치밀함을 보면 도킨스 선생님에 비할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촘스키 선생님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촘스키는 언어의 기본적인 능력은 일종의 하드웨어와 같이 제공되는 언어 기관에 학습을 통해 그 하드웨어를 사용하면서 구현되는 소프트웨어로 구성이 된다고 한 것 같은데요. (틀렸다면 좀 알려주세요. 촘스키 선생님 책 읽으면서 제가 난독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런 해석이 언어의 발전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요? 혹시 촘스키 선생님의 언어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다른 설명이 있다면 알 수 있을까요? 무언가 유발하라리의 설명은 조화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한데,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2장을 마무리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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