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GUE
저자알베르 카뮈
출판VINTAGE
발매199105
코로나, 인종차별문제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관통하는 미국 사회는 가뜩이나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에게 이질감을 심화시켜준다.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일부 국민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과연 미국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인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문제의 해결과정을 바라보자면 소수민족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인인 나와 내 가족들이 미국사회 속에서 과연 공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희대의 대통령이 써내려가고 있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역사는 그가 그전에 보여준 행동들이 백신처럼 작용해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한인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냉철한 상황 판단 없이 대선 조작의 음모론에 휩쓸리는 것을 보면 반응할 기력마저 쇠하여져 나의 의식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 무기력의 본질은 주변에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 그 원인임일 것이다. 그 난해함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한 단계 더 높은 고전의 단계로 상승해가고 있는 카뮈의 페스트는 어린 시절 힘들게 읽었으면서 느꼈던 어렴풋한 기억들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독서 토론 모임에서 페스트를 같이 읽기를 제안했고, 몇몇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페스트를 읽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대해 토론을 즐기며, 카뮈가 경험했을 부조리한 세상과 그가 걸어갔던 길을 반추해보았다. 페스트를 통한 카뮈의 주장이 너무나 명확한 것인지, 토론을 함께한 우리들이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탓인지 토론은 어쩌면 자명한 결과로 타루나 리외, 그랑, 카스텔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하며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성실히 행하여야 한다는 훈훈한 결론에 손쉽게 도달하였다.
그런 토론의 훈훈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교인인 나로서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의식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페스트 안에서 그려지는 파늘루 신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페스트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은 성당으로 모여들었으며, 파늘루 신부는 하나님깨서 애굽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인용하여 오랑시의 페스트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온전케되어야 한다고 설교한다. 파늘루 신부의 설교는 기독교 신자인 나의 입장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없으나, 그 어떤 시련들도 결국에는 합력하시는 선을 통해 결국에는 우리가 정금과 같이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어린 오탕의 아이의 심히 고통스런 죽음의 과정에서 부여주는 의사 리외의 파늘루 신부님에 대한 항의를 하는 장면은 일반적인 지성을 갖추고자하는 한 인간의 관점에서 동감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한번 그 섭리에 대한 동의에 대해 도전을 만들어낸다.
코로나와 인종차별, 그리고 미국 대선의 관통하는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역시 같은 교인임에도 받아들이기 곤란한 일들로 가득하다. 초기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공포 속에서 도시가 폐쇄되는 모습을 보며, 선교사들을 억압하는 중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교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그런 주장을 하던 분들이 코로나 창궐의 정점을 달리는 미국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지 않는 모습에는 부당함을 느껴졌다. 더 나아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항의 시위와 관련된 약탈에 대한 문제점으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세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들은 의식의 무기력을 키워낸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가짜 뉴스를 공유하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모습에 이르게되면 무기력이 절망감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교회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아래 교회가 사회에 대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고민하고 기도 속에서 그 일들을 해내야한다고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합리주의가 발전하여 유토피아가 실현될 것이라는 시대 사조를 조롱하는 듯한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카뮈는 딱히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와 인종차별, 그리고 희대의 대통령과 그의 재선에 관련된 일들 속에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전체적으로 깨닫는 것은 아마도 개개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부조리 속에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자원 봉사대를 꾸리는 타루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리외와 그랑, 카스텔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또 교회가 해야할 일들을 어렴풋하게 깨닫게 된다. 우리가 해야하는 또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들은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책에서는 페스트 창궐 속에 살아남은 자들에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상봉만이 유의미하게 남고, 타루와 같은 이웃 사랑의 실천의 희생에 대한 교훈의 자취는 덧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관념적인 논쟁에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 코로나와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는 이웃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에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노력이 세상에 덧없이 평가된다고 하더라도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것을 두번째 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소망이 사회에 대한 영향력 보다는 사회에 대한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올바로 서는 것에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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