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저자 마이클 샌델

출판 PenguinBooksLtd

발매 2020.09.03.

공정하다는 착각

저자 마이클 샌델

출판 와이즈베리

발매 2020. 12. 01.

 

 

이 블로그는 The Tyranny of Merit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들어가며

2020년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여 수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나오는 와중에 한계를 드러내며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 전부터 전문가들의 바이러스 유행에 대한 경고가 있었고, 1월 중국에서 먼저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초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환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동안에는 의료진들에게 필요한 의료 마스크나 보호장비, 확진자 검사를 위한 진단 키트, 위급환자들을 위한 인공호흡기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물자조차 조달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냈다.

이런 미국의 무기력과 취약함을 초래한 다양한 원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러스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미국 국민들이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수십년간 진행된 기업들의 해외 아웃소싱은 필수 의료장비 조달의 해외 의존도를 높여, 중요한 시점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분열이었다. 수십년간 진행된 불평등의 심화와 이에 따른 문화적 적대감은 트럼프라는 대통령을 탄생시켰으며, 위기의 순간에 미국 사회는 무능력과 취약함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한편, 바이러스의 유행은 상호협력과 거리두기라는 역설을 만들어냈다. 사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해야하는 존재이지만, 바이러스의 유행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역설은 정치, 문화, 사회적 분열과 더불어 바이러스 문제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대한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렸다.

현재 미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의 원인은 더이상 좌우의 이념대립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있다. 미국의 시스템에서 성공은 적절한 교육과 경쟁에 대한 준비 그리고 글로벌 경쟁에서의 승리에 달려있다. 이 경쟁구도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분리하여 승리자들이 누리는 성공과, 패배자들에게는 닥치는 실패를 당연시한다.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다"라는 믿음은 존재하기 힘들게 되었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미국의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게 되었으며,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게 된다.

미국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학이나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상황에 빠진 도덕적 정치적 쇄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상호 신뢰와 존중의 문화가 어떻게 퇴색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의 목표는 그런 과정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서론: 대학입시와 능력주의

2019년 3월에 입시 상담가와 대학 관계자가 개입한 부정입학 사건 사건은 미국 사회를 떠들석하게 하였다. 이 사건은 미국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더불어 누가 왜 보다 나은 능력을 가지게 되느냐는 좀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물론 정치적으로도 첨예한 마찰을 불러와 보수진영에서는 부정입학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대다수 진보진영 사람들임을 꼬집어 진보진영의 이중성을 비난하였다. 진보진영은 트럼프의 아들과 딸들이 막대한 기부금을 통해 대학에 기부 입학한 것을 바탕으로 대학입시에 관련된 경제력에 따른 뿌리 깊은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입시 윤리

물론 둘다 돈이 든다는 사실은 같지만,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기부입학과 부정입학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부유층 자녀들이 대학 입시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 이 두 방법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사실 대부분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일반 전형의 경우에도 그 이면을 잘 살펴보면, 과연 경제적 배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면에서 부정입학 사건은 능력주의 이상을 기반으로 하는 고등교육 시스템을 위협하는 광범위하게 만연된 사회의 불공정을 표면화시킨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능력위주의 입시에 대해서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서 그들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지 그들의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평가를 받아서는 않된다. 능력주의에 대한 이견이 없다면, 문제의 근원은 실제 사회가 능력주의의 이상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능력주의 이상 실현을 위한 공정한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진보주의자들은 인종별 쿼터를 입시제도에 도입하는 것이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보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이 역시 또 다른 역차별을 만들어낸다면서 반대를 한다.

또한, 부정입학 사건의 이면에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수십년간 불공정이 심되면서 대학 졸업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소득의 격차가 커지면서, 대학 진학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중산층의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며, 그들의 삶에 직접 개입하면서까지 자식들의 일류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런 행태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낙오하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이런 두려움이 심화되어,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자식들을 일류대학에 진학시키고자하는 부모들이 나타는 것일 것이다.

능력 구매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 높은 계층에 도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싶어한다. 능력과 노력을 바탕으로 성취한 결과로 그들이 성공했다고 믿는다. 입시 부정은 기부 입학 방식과 달리 들키지만 않으면 일반 전형과 같이 자녀들에게 위에서 말한 정당성과 믿음을 선물해줄 수 있다. 한편, 진정으로 개인의 능력과 재능으로만 선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그들의 능력과 재능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능력주의에 대한 고민해봐야할 또 다른 단면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공이 순전히 자신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만 여기게 되면 사회의 공공선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개개인의 겸손과 관용을 배우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부정입학 이면에 깔려있는 진정한 문제는 바로 공정에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공정의 문제만이 이성적 능력주의의 구현 방식에 대한 찬반의 요인이라고 볼 수 없다.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성공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하는가? 와 같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모든 문제들을 다루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오늘날 이 책은 능력주의에 대해서 고찰해보려고 한다.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적대감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현재의 날선 정치를 통해 능력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공공선을 위해 어떤 다른 방안이 필요한지 고찰해보아야할 것이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저자 유시민

출판 푸른나무

발매 2004.01.19.

 

이 블로그는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칼 마르크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Karl_Marx )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서는 개인의 노동 분업에 대한 노예적 종속,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 현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노동은 단순한 생활수단만이 아니라 삶의 최우선적 요구가 될 것이다. 또한 생산력은 개인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증대될 것이고, 모든 협동적 부의 원천들이 풍요로이 넘쳐흐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르주아 법칙의 협소한 지평선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는 그 깃발 위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문구를 아로새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 중에서

 

낡은 유럽을 뒤흔든 혁명의 해

1849년 마르크스는 1848년부터 유럽 전역을 뒤흔든 반란과 폭동의 주동자라는 혐의로 인해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아성인 영국은 그에게 정치적 자유와 함께 대영박물관의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그 덕분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시한부적인 종말을 고한 자본론이라는 대작을 집필할 수 있었다.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동 저작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지 마자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폭동과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프랑스 2월 혁명은 원래 지주 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의회 권력 투쟁 와중에 법개정 공청회에 노동자들이 난입하여 왕정이 붕괴되고, 브루주아 정치인들이 공화국을 세우는 혁명으로 이어진다.

 

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임시정부에 노동권 승인을 요구하며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을 요구하게 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지배계급은 무산 계급에 대한 대살육전을 펼치며 이들을 진압한다. 임시 정부의 군대와 노동자 반란군 간에 파리 시가전이 사흘간 벌어지면서 8백여명의 노동자가 전사, 1만 여명의 노동자 전후 학살, 2만 5천명이 넘는 유배자를 만들어내며 반란은 진압된다. 샤를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가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지만, 친위 쿠테타를 통해 황제로 등극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 칼 마르크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빈민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의 장미빛 미래에 대한 환상이 가난과 불행을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전파되었다. 1848년 노동자들의 혁명은 사실 공산당 선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았다고 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공산당 선언은 1848년 유럽의 혁명적 사태들이 새로운 사회로 변화해가는 가운데 필연적인 것으로 정당화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산당 선언문은 정치선언문으로 지대한 성공을 거둔다. 유려한 문장은 여러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개종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스미스의 신세계는 자연적 자유의 질서가 아닌 인간사회 발전과정의 특수 질서임을 명백하게 한 것이다. 결국 윤리도덕이나 주관적 희망이 아닌 일련의 발전 법칙을 통해 필연적으로 한층 더 평등하고 풍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유토피아의 동력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 내에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철학의 목적을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하는데 두었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를 추종하는 무리와 반대하는 무리는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마르크스 사상은 다른 많은 위대한 사상과도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하지 않지만, 터무니없는 오류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19세기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역사의 산물이지 역사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절대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마르크스의 여러 저서들을 통해 정립된 유물론적 세계관과 역사철학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우리의 20세기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19세기 노동자들의 참담한 삶을 보면서 부와 빈곤을 동시에 생산해낸 자본주의를 혐오했으며,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자본주의의 파멸과 공산주의의 도래를 사회적 필연성으로 설명한다.

 

위대한 부르주아지,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

마르크스의 경제 모델은 스미스와 리카도의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하여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유방임시장의 원리에 동의하고 그 업적도 승인했다. 다만, 자유방임 시장에서 공존해야하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는 대립과 투쟁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예찬이 나온다. 그렇기에 낡은 소유관계와 사회로 돌아가려는 공상적 사회주의를 마르크스는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임금철칙이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기계 도입으로 발생하는 실업자들로 인해 기존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마르크스 역시 자유방임 시장에서의 등가 가치의 상품 교환이 이루어지며, 상품의 교환가치는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의 양이라고 정의했다. 이 두가지 전제 위에 마르크스는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분배이론으로 잉여노동으로 생산된 이윤이 부르주아지에 독점되는 잉여가치설을 제시한다.

 

자유거래라는 또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자본가들의 신성한 소명은 이윤 혹은 잉여가치의 확대이다. 잉여가치의 확대는 잉여노동시간을 증대시키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확대와 노동자의 필요노동 시간을 줄이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확대가 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는 자본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잉여가치의 확대가 필요한 사회적 메커니즘의 한 결과인 가련한 존재이다.

 

스미스는 분업화와 특수화에 따른 생산력 증대로 고달픈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생산력 증대는 오히려 노동자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공산당 선언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사회는 종교적 정치적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적나라하고 후안무치한 것으로 바꾸었다고 비난한다.

 

마르크스 사상이 증오의 과학이라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증오를 제거해도 성립하는 그 사상의 과학적 측면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가 마르크스의 고달픈 생애

유태인 아버지 하인리히는 변호사 생활을 위해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 유태인 출신이기는 해도 마르크스는 유태인의 성향을 찾아보기 힘들다. 라틴 고전 해독과 수학에 재능을 보이다가 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베를린 대학 법학부로 옮기게 된다. 나중에 장인이 되는 루드비히 폰 베스트팔렌 남작으로부터 귀족적 특권의식이나 오만이 없는 자유주의적인 면모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사유재산의 폐지없이는 인간 사회의 발전과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생시몽의 사상을 배우게 된다.

 

베를린 대학에서 공산주의 사상가의 역정이 시작된다. 마르크스는 철학상의 대논쟁에 휩쓸려 헤결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헤겔은 세계의 본질은 변화이며, 모든 역사적 발전은 사물 자체에 내포된 자기모순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사상은 인간 관념의 변화 발전이 사회 변화를 일으킨다는 관념론적인 변증법이었다.

 

마르크스는 헤겔 사상 위에 무신론과 공산주의 등 현실 문제를 연구하는 그룹에 참여하여 철학적 급진주의자가 되어간다. 헤겔 철학을 열심히 연구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1841년 쾰른에서 마르크스는 저널리스트가 되어 곧 두각을 나타내고, 정부의 요주의 인물이 되어 파리로 망명한다. 프로이센 정부의 항의를 받은 프랑스는 추방명령을 내리고 벨기에 브르쉘로 떠난다. 하지만, 파리에서 마르크스는 엥겔스를 만나고 다른 혁명가와 사상가들을 만나는 등 의미있는 시간을 가진다. 헤겔학파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근대 철학사를 분석한 신성가족도 파리에서 집필한다.

 

브뤼셀 에서는 엥겔스와 본격적인 연구와 집필 작업에 들어간다. 사적 유물론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독일 이데올로기, 사회발전에서 실천이 지니는 중요성을 해명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집팔한다. 프로동의 빈곤의 철학을 비판하는 마르크스의 최초의 경제학 저서인 철학의 빈곤도 집필한다.

 

1847년 경제공황으로 노동자의 파업과 폭동은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런던에서는 공산주의자동맹이 결성되고, 마르크스는 이 동맹의 사상적 지도자가 되어 공산당 선언을 집필한다. 1848년도 혁명이 시작되고 1949년까지 독일은 혁명적 사태에 놓인다. 독일로 돌아가 신라인 신문을 창간하여 활동하지만, 혁명이 진압된 이후에 런던으로 1849년 다시 망명을 떠난다.

 

1856년 고향에서 온 유산으로 인해 빈민굴에서 고생하다 세 아이를 잃는다. 미국 부르주아지와 공화당 대변지인 뉴욕 튜리뷴의 통신원으로 수입을 감당하여 나름 만족할만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한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연구와 혁명활동에 전념하여 자본론을 집필하고 국제공산주의자 단체인 제1인터내셔널 서기장으로 선출된다.

 

자본은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난다

마르크스의 세계는 순수한 경쟁적 자본주의로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생산의 무정부성이다. 이 체제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 다른 체제로 발전할 운명에 처한다.

 

리카도는 자본이 축적될수록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했지만, 마르크스는 기계를 도입함으로 임금 상승을 대처하고 경쟁으로 잉여가치가 줄어들어 맬서스가 이야기한 과잉생산 공황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 더 강한 자본은 쓰러진 기업을 인수하여 독점의 길로 나아간다. 결국 소수의 손에 모든 생산 수단이 독점되는 체제가 된다.

 

자본의 독점이 진행되면서 노동자에 대한 압제, 노예화, 착취가 진행된다.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정해주고, 부르주아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싸움은 폭동이 된다. 결국 부르지아지의 몰락과 플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불가피한 것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는 다르지만, 마르크스에게는 역사란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사회적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삶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서부터 비롯된 증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마르크스의 과학이 중대한 결함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가치론에 대한 공격의 근거는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가치는 추상적이며, 현실세계에서는 가격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수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가격이 가치를 반영하는 것을 증명하려했다. 비록 사소한 실수는 있지만 약간의 수정만 곁들이면 유효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스미스와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이 해결하지 못한 업적이다.

 

또 하나의 공격은 규범적인 경제학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분석하는 것에 자기의 역할을 다해야한다는 주장인데, 사실 이 주장 역시 현존하는 사회질서가 유지되어야한다는 암묵적인 규범을 담고 있다.

 

한편 마르크스의 결정론이 사실이라면 굳이 혁명을 해야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뭐 결정이 되어있기는 해도 하루 빨리 그 결정을 앞당기는 노력은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잘못 추론된 결정론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한 혁명으로 사회의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비판은 일면 타당할 수 있다.

 

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의 불공정함을 발견하는데 마르크스의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땀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났다고 보는 견해와 크게 차이가 없다. 이런 잘못된 자본의 원시적 축적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도덕적으로 자본주의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구론적 국가관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 수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초의 노동자혁명, 파리 코뮌

마르크스는 생전에 사회주의 혁명을 보지 못하였다. 1871년에 수립된 최초의 플롤레타리아 정권인 파리 코뮌은 72일만에 붕괴된다. 파리 코뮌의 발단은 프로이센이 통일독일을 수립해가는 과정에 발발한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 떼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두 국가 간의 전쟁동안 두 나라의 프롤렐타리아는 국적을 초월하여 단결하지 않고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전쟁에 패배한 프랑스에서는 내전이 발발하여 혁명으로 이어진다. 1871년 3월 18일에 시작된 내전에서는 하루만에 국민군의 승리로 이어져 3월 26일 코뮌의회 선거가 실시되어 최초의 노동자 권력인 코뮌 정부가 수립된다. 하지만, 독일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은 부르주아지는 파리에 대한 총공격을 가해 혁명을 분쇄한다.

 

마르크스는 지독한 공부와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병에 시달렸다. 아내 옌니가 먼저 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큰딸마저 죽고 마르크스는 폐렴으로 사망한다.

 

마르크스가 남긴 수많은 원고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단 한 사람 엥겔스는 그의 원고를 정리하여 자본론 2권과 3권을 출간한다. 엥겔스는 부르주아의 외모와 생활 습관을 가졌던 사람으로 마르크스를 만나기 전에도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 정치 세력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처음 언급하기도 한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그늘에 많이 가려졌기는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마르크스의 사상이 지금과 같은 활기와 넓이를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혁명의 가장 무서운 적은 효과적인 개량

마르크스의 과학적 예언은 그대로 실현이 되지 못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서유럽이 아닌 러시아와 동유럽 중국, 쿠바, 베트남과 같은 후진 농업국과 제3세계 국가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런 사회주의 국가들은 20세기 말에 붕괴되어 멸망의 운명을 가진 자본주의로부터 원조를 받는 신세를 거쳐 자본주의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로 인해 마르크스의 사상과 경제학을 모두 부정할 수 는 없다. 사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을 이야기했지만, 그 이후에 무엇이 도래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그의 유토피아적 소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대한 경제학자로소의 분석과 결론 때문이다. 그의 순수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독점자본을 출현실킬 것이라는 예언은 그대로 적중이 된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신기술의 부단한 도입, 그리고 주기적인 공황도 적중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만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 이유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운 부르주아지의 개량 때문이다. 서유럽의 혁명적 정세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래를 바라보면서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의 수정을 가하기 시작한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스미스와 리카도 그리고 마르크스가 이야기하 순수 경쟁자본주의와는 많이 다르다.

 

공산당 선언에서 대중의 호감과 지지를 위해 내건 요구한 사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토지사유를 폐지하고 모든 지대를 공공목적에 사용한다.

2. 소득에 대해 높은 누진세를 실시한다.

3. 모든 상속권을 폐지한다.

4. 모든 망명자와 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한다.

5. 국가자본과 배타적 독점을 가진 국립은행을 통해 신용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킨다

6. 통신과 운송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킨다.

7. 국가소유의 공장과 생산도구를 증대시킨다.

8. 누구나 동등한 노동의 의무를 지닌다. 특히 농업을 위해 산업군을 편성한다.

9. 농업과 제조업을 결함시킨다. 인구를 전국적으로 좀 더 균등하게 배분함으로써 도시와 농촌 사이에 처벌을 점차 폐지한다.

10. 공립학교에서는 모든 어린이를 위해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현존하는 어린이의 공장노동을 폐지한다. 교육과 산업과 생산을 결합한다.

 

혁명의 가장 무서운 적은 대중의 가슴 속에서 반란의 싹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개량이다. 수정자본주의는 부르지아지의 각성과 시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얻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는 공산당 선언에서 나온 요구사항들이 상당부분 반영이 되어있다.

 

마르크스 사상은 19세기 유럽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이 절대 빈곤에 빠지지 않았다. 그의 사상과 이론을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가 추구한 가치이다. 경제적 평등에 뒷받침되는 진정한 자유, 소외되지 않는 노동과 정당한 근로에 의한 소득,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불합리한 관습과 이데올로기 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과 같은 가치들은 인류문명이 지향해야하는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