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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6.13 사피엔스 -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날

Sapiens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VINTAGE

발매 2015.05.20.

 

이 블로그는 Sapiens를 읽으면서 작성한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원서를 읽어서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생각과 해석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3 A Day in the Life of Adam and Eve

수렵채집 시대의 생활양식들은 여전히 우리의 두뇌와 의식에 살아있어 오늘날의 사회적 심리적 특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게걸스러운 유전자 이론"이 대표적인 예로 수렵채집, 시절에 높은 칼로리의 단맛이 강한 과일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려야만 하던 습성이 그대로 유전자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높은 칼로리의 단 음식의 과도한 섭취가 건강에 해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별다른 이견이 없는 이론과 달리 수렵채집 시대의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두개의 상반된 이견들이 존재합니다. 사유재산과 일부일처제가 아닌 공동체 사회이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일부일처제와 핵가족 중심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서로 대립합니다. 하지만 수렵채집 시대에 대한 해석에는 문자 기록이 없이, 고고학적인 편향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편향된 시각으로 수렵채집 시대를 획일적으로 제단하는 우려는 피해야합니다. 소위 추론을 할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기준도 사실 우리들의 삶에 제한되므로 수렵채집 사회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놓치게할 수 있습니다. 인지혁명과 허구의 등장으로 수렵채집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다양했을 것입니다.

 

The Original Affluent Society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사회 이전의 사회를 일반화시켜보자면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대부분 인간들로 구성된 부족 사회였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개 외에는 가축화한 동물이 없었을 것입니다.

 

부족 내 구성원들은 서로 친밀하여 외로움이나 프라이버스 같은 것들은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부족들 간에도 상호 협력을 하다가 부족들 간의 연합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부족들은 고립되어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영구적인 정치체계, 도시, 국가를 탄생시키지 못하고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입니다. 이들 부족들은 계절의 변화, 동물들의 이동이나 식물들의 성장 주기에 따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동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동아프리카에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쳐나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정착생활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4만 5천년 전 최초로, 인도네시아 해안에는 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정착촌이 등장합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수렵보다는 좀더 유연하고 기회적인 채집이 식량을 구하는 중심 수단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식량 뿐만 아니라 지식의 습득도 매우 중요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주변의 지형들을 머리 속에 기억해야하고, 동물이나 식물들의 습성에 대해서도 알아야했을 것입니다. 이런 기술들은 배우고 연습하여 숙달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현대인과 비교하면 수립채집인들은 주변환경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수렵시대를 기점으로 인간의 두뇌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또한, 수렵채집인들은 현대인들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났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렵채집 사회는 좀더 편안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수렵채집인들은 보통 주당 35 ~ 45 시간 정도 일을 합니다. 오늘날 개발 도상국 노동자들의 60 ~ 80 시간, 선진국 노동자들의 40 ~ 45 시간 주당 노동시간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고대의 수렵채집인들은 오늘날 칼라하리 사막보다 더 비옥한 지역에서 살았다고 보면 효율성이 더 높았을 것입니다. 이로인해 더 많은 여가 시간을 누렸을 것으로 보입니니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이상적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현재보다 더 크고 건강했을 것입니다. 채집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식량원으로 말미암아 영양학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특정 식량 자원이 사라지더라도 다른 식량으로 대체하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축화된 동물이 없고, 낮은 인구밀도로 전염성 질환의 발생도 상대적으로 낮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렵채집인들의 삶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어려움과 잔인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 존재했던 파라과이의 Ache 부족은 부양할 수 없는 구성원들을 버리기나 죽이기도 하는 잔인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어른들간의 특별한 충돌이 없고, 적은 소유에도 관대한 모습을 보이며, 성공이나 부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이나 높은 수준의 친교를 중요시하는 긍정적인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잔인함이 부족인들을 사냥하여 죽이던 파라과이 농부들과의 전쟁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로 수렵채집인들의 생활 방식을 폄훼하거나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Talking Ghosts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종교는 애니미즘이었을 것으로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애니미즘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심지어 자연현상까지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가 직접 교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질적인 사물과 살아있는 생물 외에 형이상학적인 객체도 애니미즘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고, 특정한 존재들이 계층 없이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애니미즘은 특정한 종교라기 보다는 당시 성행하던 종교, 문화, 믿음을 통칭하는 좀더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인정하고, 성급한 일반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한편 종교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회정치 구조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제한적입니다. 아마 각 부족마다 고유의 구조를 가졌을 것으로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러시아의 Sungir 지역의 3만년 전 부족의 무덤에서는 메머드 상아로 장식된 중년 남자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해당 부족이 계급사회 구조를 가졌을 것을 판단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아로 장식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함깨 묻혀있는 무덤에 대한 해석입니다. 부족장의 자식이거나, 제사의 제물이었을 수 도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계시로 인해 특별히 구분된 아이들일 수 있다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DNA가 지정해준 방식이나 다른 동물들의 행동 방식을 벗어나는 고유의 사회정치적인 코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Peace or War?

고고학적인 증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고대 수렵채집 사회가 호전적이었는지, 아니면 평화적이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까지 남아있던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를 통해 판단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현대의 수렵채집 사회는 주로 고립되어있는 살기 어려운 지역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밀도도 낮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근처에 잘 조직화된 국가가 존재하여 상대적으로 전쟁을 삼가하는 경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이나 호주의 원주민들은 이와 반대로 잦은 무력 충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역시 유럽의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호전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들에 대한 해석도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한편, 포르투갈, 이스라엘 그리고 댜뉴브 계곡에 있는 400 여개의 뼈 샘플에 대한 연구는 포르투갈과 이스라엘의 경우 한두개의 뼈 샘플에만 골절이과 같이 폭력적인 외력에 의한 상처가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고, 다뉴브 계곡에서는 무려 18개의 샘플에서 폭력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4.5%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쟁과 학살이 만연하다는 현대의 1.5%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단의 Jabl Sahaba에서는 무려 40%에 달하는 뼈 샘플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했고, 바바리아의 Ofnet 동굴의 두군데 매장지에서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로 구성된 38구의 시체들이 발견되어 대량 학살도 당시에 있었음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고대 수렵채집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부족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 중에는 호전적인 부족들도, 평화적인 부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The Curtain of Silence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보편적인 삶을 추론해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맞닥드리게 된 흥미로운 사건에 대한 정보를 거의 알 수 없습니다. 고고학적인 증거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있겠지만, 정치적, 정신적인 활동에 대한 정보들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수만년의 역사는 침묵의 커튼에 쌓여져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들에 대한 답을 우리는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답이 없는 사실들에 대한 질문들을 하는 것은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 수렵채집을 했던 인간들이 세상을 엄청나게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의 생태계에 엄청난 파멸적인영향을 끼쳐 지구의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

3장에서는 몇가지 단편적인 증거나 현재의 삶의 방식으로 고대 수렵채집 시대의 생활 양식을 쉽게 판단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학자가 가져야하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삶은 더 많은 여가시간을 누리고, 건강했으며, 질병에도 덜 시달리는 등 현대인들의 삶보다 나은 면도 부각시키고, 사회에 도태된 개체에 대해서는 잔인한 면도 보여주면서, 지나치게 그들의 삶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이상화하거나 폄훼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합니다. 저자의 성급한 판단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는 100% 동의를 하지만, 수렵채집 사회가 농경 사회로 이행하게 된 추론을 통해 수렵 채집 사회의 한계를 설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기후가 좋은 해에는 수렵채집의 성과가 좋았겠지만,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해 성과가 좋은 않은 경우에는 굶주림과 심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삶이 반복되는 가운데, 인간들은 삶의 불안함을 느꼈을 것 같고요. 종교 의식과 같은 형태로 그 불안함을 극복해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농업이 그나마 개인의 노력으로 불안함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받아들여져 농경 사회로 이행하게 되었을텐데요.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뒤에 가면 나오게 될까요?

 

물질적인 사물, 살아있는 생물, 심지어 형이상학적인 객체도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애니미즘에 대한 설명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성행하던 특정한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여러 종교, 문화, 믿음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개념이라는 부분도 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장에서는 유발하라리가 기존의 선사시대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들에 대한 비판이 마음에 많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가령 지질학적인 사건이나 고고학적인 사건들에 대한 주장들을 들여다보면, 열린 관점에서 새로운 관찰이나 증거들을 바탕으로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들이 수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3장을 마무리해봅니다.